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4-09-04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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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인가, 대낮 한 차례
폭염의 잔류부대가 마당에 집결하고 있다.
며칠째, 어디론가 계속 철수하고 있다.
그것이 차츰 소규모다.
버려진 군용 텐트나 여자들같이
호박넝쿨의 저 찢어져 망한 이파리들
먼지 뒤집어쓴 채 너풀거리다
밤에 떠나는 기러기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몇몇 집들이 더 돌아와서
또, 한 세상 창문이 여닫힌다.

- 문인수 (1945- ) ‘9월’전문


어느새 9월이다 머지않아 햇살은 철수하는 잔류부대처럼 힘을 잃어갈 것이다. 여름은 꽃들의 전쟁이었고 나무들의 투쟁이었다. 더 푸르고 더 싱싱하게를 외치던 전쟁도 투쟁도 끝나간다. 승승장구하던 군사들은 후퇴하고 버려진 군용텐트와 여자들만 남아있다. 기우는 햇살, 잔류부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제 빈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 전쟁이 끝났으니 편안한 가을이 오려나보다.

- 임혜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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