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4-08-28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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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돌아라!

열 받아서 돌아버리겠거든
지하철 2호선이나 타고 돌아라
사방이 턱턱 막힌 옥탑방 2층
손바닥 같은 선풍기가 밤새 돌아도
저 고층건물의 에어컨을 낳겠느냐
선풍기가 선풍기를 낳는 이 철벽의 순환!
비즐 비즐 땀 흘리다 못 견디겠거든
순환선을 타고 돌아라 거기

사람들이 졸며 절망하며 밤새워
도는구나 돌아서 직장으로 가는구나
제정신 가지고는 한시도 살 수 없는
이 열탕지옥 같은 비정의 욕망세상
또 한 대의 순환선이 굉음을 울리며 달려든다
저 견딜 수 없는 절망이 다가온다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우리들의 희망을 위하여
던져라 던져라 던져 차라리
대가리를 박고 온몸으로 뭉개져 버리고 싶은
아아 잠들 수 없는 옥탑방의 몸부림


- 박형진 (1958- ) ‘옥탑방의 딸에게’ 전문


농사꾼 시인께서 서울 딸이 사는 곳에 하루를 묵다 더위 때문에 잠들 수 없어 나와 새벽 지하철 속에서 쓴 시라고 한다. 욕망의 열탕지옥, 굉음을 울리며 도는 순환선, 옥탑방의 가난 등 도시의 절망적 모습이 한 눈에 보인다. 정말 세상은 제 정신을 가지고는 살 수 없는 곳일까. 그러나 어디에도 희망은 있다. 시련으로 단련된 저 순정하고 절실한 희망. 내일을 기약할 수도 없는 희망이 오늘의 절망 속에서 아프게 빛나고 있다.

-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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