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저 아까운 와인…”

2014-08-27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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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흘러내리는 게 물이 아니야. 카버네 소비뇽이야!”

지난 일요일 새벽 발생한 나파 밸리의 지진 뉴스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 한 것은 물처럼 흘러내리는 와인이었다. 평소 비싸서 선뜻 집어 들지도 못하던 나파 밸리 와인이 오크통에서, 병에서 터져 나와 바닥을 질퍽하게 만들고 있으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파 밸리는 ‘와포’라는 인디언들이 수천년 전부터 살던 땅이었다. 평화로운 인디언 마을에 스페인 정복자들이 들어오고 이어 콜레라와 수두 등 전염병이 창궐하고, 골드러시 이후 백인들이 몰려들면서 원주민들은 거의 종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백인으로서 나파 밸리에 최초로 정착한 사람은 조지 욘트라는 사람이었다. 1831년 당시 멕시코 땅이던 나파 밸리에 도착한 그는 멕시코 장군으로부터 토지를 무상으로 얻어 집을 짓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몇 년 후 그가 포도나무를 심은 것이 나파 밸리 와인 역사의 시작이었다.

나파 밸리의 와인사업이 번창하게 된 데는 다른 요인이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금이었다. 골드러시를 타고 벼락부자들이 탄생하면서 돈이 흔해진 샌프란시스코 일대에서 와인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1861년 찰스 크럭이 처음으로 상업적 목적으로 와이너리를 만든 후 30년 사이 나파 밸리 일대에는 619개 포도 재배지와 140여 와이너리가 만들어졌다.

수십년 잘 나가던 나파 밸리에 직격탄이 날아든 든 것은 1920년이었다. 금주법이 시행되면서 나파 밸리는 죽은 타운이 되었다. 와이너리 대부분이 문을 닫았고, 포도밭은 자두나 호두밭으로 바뀌었다.

1933년 금주법이 해제되면서 숨통이 트이기는 했지만 포도주 산업이 본격적으로 다시 활기를 띈 것은 1960년대나 되어서였다. 1966년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가 세워진 것을 기점으로 대형 와이너리들이 들어서면서 나파 밸리는 세계적 와인 생산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와인 좋고, 음식 좋고, 경치 좋은 나파 밸리는 관광지로서도 인기가 높아 연간 500만명이 방문한다.

다행히도 이번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생각보다 적다. 진앙이 나파 시 6마일 남쪽 지점이었는 데 대부분의 와이너리들은 그 보다 북쪽에 위치해 있어서 충격이 덜했다. 아울러 2014년 포도 대부분은 아직 수확할 때가 아니어서 포도 넝쿨에 달려있었던 덕분에 피해가 덜했다. 피노 놔르와 백포도주용 포도만 수확 중일 뿐 멀로나 카버네 포도는 몇 주 더 있어야 수확 철이다.

그렇다면 와인 값은? 아까운 와인이 마구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서 와인 애호가들에게 우선 드는 생각은 ‘가격’이다. 나파 밸리는 와인의 상징으로서 의미가 크지 실제 생산량은 많지 않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4% 미만이 나파 밸리 산이다. 특정 와이너리의 포도주를 고집하지 않는 한 전반적인 와인 값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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