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시카고 퍼포밍 아트센터에서 서울시극단의 위안부소재를 다룬 연극 ‘봉선화’를 관람했다. 연극의 대충 줄거리는 이렇다. 순이는 16살이었고 아직 시집가지 않았다. 예쁜 댕기 고르느라 아랫마을을 어슬렁거린 게 화근이었다. 일본인 인간사냥꾼들에게 납치됐다. 같은 동네 살던 13살 옥분이는 이제 막 가슴이 올라와서 젖멍울이 많이 아팠다. 그 옥분이도 순이 언니와 있다가 함께 끌려갔다.
두 소녀는 그렇게 강제로 일본군의 위안부가 되었다. 그들은 원래 소녀였으나 일본군은 ‘조센삐’(조선 창녀)라 불렀다. 일본군의 만행과 전쟁의 모진 고초 속에 옥분이는 죽었다 그 옥분이를 기억하는 순이는 기어코 살아남았다. 아들도 낳았다. 그 아들을 다시 딸을 낳았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 순이는 살아 있으면서도 스스로 역사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순이가 나이 들어 죽으면서 그녀는 책 속의 죽은 역사가 됐다. 봉선화는 그 ‘순이’룰 우리 앞에 다시 살리려는 연극이다. 연극 봉선화를 보면서 특히 내 마음을 찢어 놓은 대사가 있었다.
“개구리가 돌을 맞은 것이 부끄러움이더냐? 길을 가다가 불량배들에게 죽도록 얻어맞은 것이 부끄러움이더냐? 길을 가다가 불량배들에게 죽도록 얻어맞은 것이 수치더냐? 내가 당한 것도 그와 같다. 억울한 일이지 부끄러움은 아니란 말이다.”
위안부들은 일본인의 만행에 상처를 입었을 뿐 아니라 같은 민족인 우리가 부끄러움으로 여겨 또한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또 이런 대사도 가슴에 깊이 박혔다.
“독일은 일찍이 사죄를 했다는데 말이야! 전쟁 범죄를 공부한 한 독일 사람이 이런 글을 썼어. 독일이 일찍이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사죄한 것은 그들이 특별히 양심적이어서가 아니라 유태인들은 나치가 만행을 한 증거물을 철저히 보관했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은 그 만행을 합심해서 국제사회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그건 몰랐네. 나는 독일이 일찍이 사죄를 한 것은 독일인의 의식 수준이 높아서라고 생각 했는데. 독일인의 의식수준이 높아서 그런 게 아니고 중요한 것은 유대인이 똘똘 뭉쳐서 대든 것에 독일은 꼼짝없이 과거범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지.”
이 대목에서 일본은 왜 반세기가 넘어도 위안부 만행의 사죄를 왜 못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겨났고, 그 이유는 같은 민족인 우리가 일본의 위안부 만행 증거물들을 철저히 보관 하지 못했고 똘똘 뭉쳐서 일본의 위안부 만행을 국제사회에 고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하다. 일본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고발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일을 너무 거창하게 받아들여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해 나가면 된다.
광복절인 오는 15일 미 전국에서 동시에 아베정권 사과촉구 궐기대회가 열린다. 촉구문 낭독 후에는 사과를 요구하는 서명을 받게 된다. 미주 한인동포들은 적극적으로 각 지역 한인회 광복절 행사에 참석 후 서명을 해 주기를 바란다. 이런 일이 우리 앞에 놓인 작은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언뜻 작은 일인 듯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일본의 위안부 만행을 국제사회에 고발하는 역사적 거사이다. 다만 모두가 빠짐없이 동참할 때 우리가 원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니 나 하나 빠진다고 무슨 대수이겠느냐는 안일한 생각은 버리고 미주 전 지역에서 열리는 8.15 광복절 행사와 서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기를 당부한다. 이것이 애국이고 애족이며 아베 정권의 오만함을 심판하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