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피멍 든 군대에 2세 자녀 보내라니

2014-08-08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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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목 / 사회부 정책사회팀장·부장

12일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구차를 당하다 살해된 윤 일병 사건에 대한 분노 여론이 들끓고 있다. 자식을 이미 군대에 보냈거나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한국 부모들의 분노와 두려움, 그 애타는 심정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자식의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부모들은 “내 아들은 절대 군대에 보내지 않겠다”거나 “군이 항구적이고 안심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지 않은 한 자식을 입대시킬 수는 없다”며 두려움과 분노를 터뜨리기도 한다. 군에 복무 중인 자식을 둔 부모들은 “원정출산이라도 했어야 하나“라며 뜨거웠던 원정출산 대열에 오르지 못했던 자신을 한탄하는가 하면 "군대에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왜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이 자식을 군대 안 보내려는지 알겠다”고 장탄식을 쏟아내기도 한다.

어디 한국 부모들의 심정에는 미치겠는가마는 미국에 사는 한인 부모들의 분노와 두려움도 결코 작지 않다. 미국 국적이나 영주권을 가지고 있어도 병역에서 벗어나기 힘든 2세 자녀가 있는 한인 부모들이라면 자식이 한국 여행만 가도 혹시 강제 징집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제 그 불안은 분노를 넘어 두려움과 공포가 됐다. 윤 일병 사건으로 군대 담장에 막혔던 병사들의 신음소리를 듣고, 피멍 든 군의 참혹한 민낯을 보고 말았는데 어찌 두렵지 않고 공포스럽지 없겠는가.


한국군에 입대한 영주권자 자녀가 있는 한인 부모들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진짜 사나이’의 두터운 군대 화장발이 효험을 발휘했는지 매년 한국군에 입대하는 영주권자 2세들이 늘고 있어 한인 부모들에게도 윤 일병 사건은 남의 일만이 아니다. 군 당국 통계에 따르면 한국군에 입대한 영주권자 2세들은 이미 1,000명을 넘어 2,000명 선에 육박한다.

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군에서 정확한 조사 없이 단순 자살로 처리된 사망 병사가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 중 밝혀지지 않고 묻혀버린 제2, 제3의 ‘윤 일병’들이 없었다고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윤 일병 사건을 은폐하려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군 고위층의 행태를 보면 부모들이 과연 군 입대가 ‘나라 사랑’이라며 자식에게 입대를 권유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한국 군대가 달라져야 한다. 군사독재시절의 폐습을 버리지 못한 채 ‘군대는 그런 것’이라는 안이한 자세라면 참혹한 병영 모습이 바뀌기를 기대할 수 없다. 군사독재 시절 가혹한 고문과 구타로 숱한 의문사 사건들을 만들고 은폐해왔던 군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는 일이다.

한인 2세들에 대한 병역제도 역시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린 시절에 이민 와 한국말이 어눌하고, 한국 문화와 생활양식이 낯선 한인 2세들에게 기계적인 형평성만을 앞세워 병역 의무를 강요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인지 현명하게 재고해보아야 한다.

관련 법률조차 없이 병무청 규정과 대통령령만으로 2세들을 병역에 옭아매놓고 있는 ‘재외국민 2세 제도’ 역시 시급한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재외국민 2세 조항 중 한국에 3년 이상 체류하는 선천적 이중국적자에게는 병역 의무를 부과하겠다는 불합리한 조항은 한인 2세들에게 한국과 등을 지고 살라는 강요와 다르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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