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창 하나가 그 지역 범죄 확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허술한 골목길에 보닛을 열어놓은 차 두 대를 주차해 두었다. 한 대는 멀쩡한 상태로, 다른 한 대는 유리창을 조금 깬 상태로 일주일을 방치했는데, 결과는 현저히 달랐다. 보닛만 열어놓은 차는 그대로 있었던 반면, 유리창이 깨진 차는 10분 만에 배터리가 없어졌고 타이어도 모두 도난당했으며 낙서와 파손으로 1주일 후에는 거의 고철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1982년 미국의 범죄심리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주장한 것으로, 건물의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하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이다. 누군가에 의해 이미 손상된 상태(깨진 유리창)가 왜 범죄심리를 부추기는 것일까? 이미 저질러진 범죄에 호응하며 자신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심리가 자동차 대신 ‘사회’에, 깨진 유리창 대신 부정부패와 같은 ‘사회악’에 작용할 때 문제는 매우 심각해진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100여 일이 지났다. 하지만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각종 의혹만 증폭되고 있다. 350만이 넘는 국민들이 철저한 진실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에 동참하였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대책위원회와 국민대책회의,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러한 국민들의 의지를 모아 지난 7월9일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입법 청원하였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 및 기소권 부여 문제를 놓고 정치적 공방만 계속하고 있으니 과연 그들에게 진실규명의 의지가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피해자 가족들은 파행에 가까운 국정조사의 한계를 보다 못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광화문 광장과 국회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아들을 잃은 두 아버지는 노란 리본을 묶은 십자가를 등에 지고 800 km의 힘겨운 국토순례를 시작했다. 자식을 잃고 몸조차 가누기 힘든 상태의 이들을 누가 거리로 내몰았는가?
사고 발생 이후 인명 구조, 실종자 수색,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한 재발방지책 마련까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다. 하지만 일부 국민들은 언론의 보도만 믿고 “제대로 조사가 되고 있는데 왜 특별법을 만들라고 유난을 떠느냐, 유병언만 잡으면 다 해결되는 것 아니냐, 유족들의 요구가 너무 지나친 것 같다” 등의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어떤 이는 “세상에 억울한 죽음이 하나 둘이냐? 이제 그만 끝내라”고도 한다.
그렇다. 세상에 억울한 죽음이 세월호 희생자들뿐이겠는가. 하지만 억울함에도 ‘급(級)’이 있다. 참사의 원인이 공직사회에 퍼져 있는 뿌리 깊은 부정부패에 기인한 점, 참사의 본질이 국가 재난구조 시스템의 부재에 의한 사회적 살인이라는 점, 진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세력이 있다는 점에서 어느 사고와도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억울하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된 문제를 발본색원하여 해결하지 않고서는 또 다른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없다. 철저하게 진실을 파헤쳐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 책임자를 처벌하여 사회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사회는 불신 풍조 속에 병들어 갈 것이다.
삼성과 K팝으로 대표되던 선진 대한민국의 허상은 무너지고, 부끄러운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한국사회는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달라져야 할 것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 주는 경고를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깨진 유리창’을 바꾸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무고하게 죽어간 아이들에 대한 작은 속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