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4-07-29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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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와서 하는 일이란
천지간에 어둠을 깔아놓는 일
그걸 거두려고 이튿날의 아침 해가 솟아오르기까지
밤은 절대로 저를 지키려고 사방을 꼭 잠가둔다
여름밤은 너무 짧아 수평선 채 잠그지 못해
두 사내가 빠져나와 한밤의 모래톱에 마주 앉았다
이봐, 할 말이 산더미처럼 쌓였어
부려놓으면 바다가 다 메워질 거야
그럴 테지, 사방 빼곡이 채운 이 어둠 봐

막막해서 도무지 끝 간 데를 몰라
두런거리는 말소리에 겹쳐
밤새도록 철썩거리며 파도가 오고
그래서 망연한 여름밤은 더욱 짧다
어느새 아침 해가 솟아
두 사람을 해안선 이쪽저쪽으로 갈라놓는다
그 경계인 듯 파도가
다시 하루를 구기며 허옇게 부서진다

- 김명인(1946- ) ‘천지간’ 전문



폭양이 누그러지고 긴 그림자를 끌며 저녁이 와 바닷가에 어둠을 부려놓는다. 밤이 와도 무덥기만 한 여름. 더위를 이기지 못한 두 사람이 모래톱에 나와 앉는다. 바다는 쏴아쏴아 산 같이 쌓였던 저들의 이야기를 쏟아놓고 천지간 망망한 어둠 속의 두 사나이도 이야기를 나눈다. 아침이 와 바다와 하늘을 빛으로 가를 때까지 지난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들. 오랜 친구일까, 아니면 형제일까. 여름밤이 짧아 못내 아쉽기만 하단다.

- 임혜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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