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등이 켜졌다. 길을 건너려다가 멈추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냥 마구 길을 건넌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신호등이 바뀌었다. 그린 색으로. 그렇지만 건너려다가 다시 멈추었다. 신호등을 무시하고 차가 제멋대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다시 시그널이 바뀌었다. 빨간 등으로. 사람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마구 건너간다. 5분, 6분, 7분…. 근 10분을 제자리에 서서 지켜보았다. 무표정한 행인들은 제 멋대로 가고 있었다. 그럴 거면 신호등은 도대체 왜 설치해 놓은 것인지….”
최근 서울을 방문했던 한 미주 한인의 이야기다. 2014년 7월 초순께의 시점. 강남의 서울고등법원 청사 앞을 지나게 됐다고 한다. 그때 그 법원 청사 정문에서 맞이하고, 목격하게 된 해프닝이었다고 한다.
민심은 여전히 싸늘하다. 유병언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아들 유대균이 검거됐다. 민심은 그러나 싸늘한 정도가 지나 얼어붙은 느낌마저 준다.
공권력이란 공권력은 죄다 동원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그런 결과라니. 정부에 대한 신뢰가 거의 바닥이 났다. 발표 그대로라면 그렇게 무능한 정부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그래서 다시 만연하는 게 온갖 음모론이다.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이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그 콩이 진짜 콩일까. 의심은 여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그 이후 한국사회의 모든 현상을 수렴하는 키워드는 ‘불신’이다. 정부는 말할 것도 없다. 언론은 더 더욱 믿을 것이 못된다. 한 마디로 한국 사회의 기득권층은 모두 불신의 대상인 것이다.
도덕성이 결여돼있다. 신뢰 할 수 없고 문제 해결 능력도 없다. 그런 한심한 존재가 국민의 눈에 비친 정부와 사회 지도층인 것으로 한 주요 여론조사는 밝히고 있다. 한 마디로 개혁 대상이 바로 그들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은 그렇다고 치고 심각한 사실은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도 상상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한국은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인가’란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한 사람이 1% 안팎에 머물고 있는 것.
무엇이 한국 사회를 이 같은 불신 사회로 몰아가고 있을까. 일반국민은 ‘부정부패’(67%)를 그 주범으로 꼽았다. 전문가들은 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다. ‘원칙 경시와 준법정신 부재’(77%)야 말로 그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분주히 오가고 있다. 너무나 내 삶에 바쁘다. 그리고 그 바쁜 삶에서 중요한 건 원칙 준수가 아니다. 융통성이다. 그러니 교통신호등 쯤이야.”
법원 청사 정문 앞 길에서조차 무시되는 교통 시그널 - 어쩌다 대한민국은 불신공화국이 되었나. 이 질문의 답은 바로 여기서부터 찾아지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