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숙함. 자유로움 넘치는 어른들만의 휴식 공간
▶ 프란시스코 고야. 엘 그레코 등 유럽 거장 명작 만날 수 있어
1913년 토마스 헤이스팅스의 신고전주의 양식 건물에
코르크 산업 거부 헨리 클레이 프릭이 자신의 소장품 공개
회화.조각 모두 유리 케이스 없어...10세 미만은 관람 금지
CUNY 헌터 컬리지에 인접한 지하철 6라인의 68번가역. 오밀조밀 모여 있는 캠퍼스 특유의 생기발랄함이 가득한 이곳에 뜻밖의 웅장한 대저택이 자리한다. ‘미국의 코르크왕’으로 불린 헨리 클레이 프릭의 저택이다. 1913년 건립 당시 인근 카네기의 저택마저 오두막처럼 보이게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만큼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 장중한 분위기로 대부호다운 품격을 자랑했다.
■‘강탈 귀족’ 프릭의 변신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미국의 번영기에 주요 산업을 경영한 기업가들은 한 시기 ‘강탈 귀족’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으로 불렸다. 이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방식으로 큰돈을 거머쥐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정부의 권한이나 시스템만으로 이들의 악행을 제어할 수 없었다. 그만큼 이들 권한은 막강해 정부 위에 군림하는 인상조차 강하게 풍겼다.
그러한 실업가 중 연료용 석탄인 코르크 산업으로 큰돈을 번 이가 있었다. 펜실베니아주 출신의 헨리 클레이 프릭이다. 사업과 함께 미술품 수집에도 조예가 깊던 그는, 뉴욕으로 나와 프릭 컬렉션(Frick Collection)이라는 미술관을 열었다. 1913년 토마스 헤이스팅스가 대리석을 이용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완성시킨 건물에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소장품을 공개한 것이다.
■아늑한 기운 가득한 전시공간의 매력
아늑한 기운을 품은 중앙 정원의 분수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고요함. 과연 이곳이 그토록 번잡한 맨해튼 한복판에 있는 게 맞는지 착각하게 만들만큼 프릭 컬렉션에는 오묘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게다가 이곳은 10세 미만은 관람이 금지되어 어른들만의 휴식 공간으로서 기품 있는 매력을 자랑한다. 회화나 조각 역시 답답한 유리 케이스에 갇혀 있지 않아 더 가까이서 이들을 만날 수 있다. 특유의 정숙함과 자유로움이 프릭 컬렉션이 가진 진짜 매력인 듯하다.
관람객들은 이 같은 고풍스러운 전시 환경 속에서 유럽 거장들의 명작을 두루 만날 수 있다. 요하네스 얀 베르메르에 더해 프란시스코 고야, 디에고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 등의 명작이 이곳에 자리한다. 또한 18세기를 대표하는 누드화가 프랑수아 부셰의 연작 <예술과 과학>을 비롯해 로코코풍 가구들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이처럼 프릭 컬렉션은 회화나 조각만이 아니라 13-19세기의 앤티크 가구나 도자기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프릭 컬렉션의 소장품에는 특정 시대나 국가의 틀을 넘어 일관된 경향이나 기호까지 발견할 수 있다. 화려한 역사화나 노골적 나체화보다, 정숙한 초상화 혹은 밝은 풍경화가 주를 이뤄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거기에 크지 않은 규모와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회화들, 섬세한 표정이 돋보이는 조각상과 은은하게 비추는 조명이 프릭 고유의 정숙함을 초래한다. <이수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