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플파이 아니면 펌킨파이라도

2014-07-19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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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경모 / 건축가

한국사회에 편만해 있는 병폐 가운데 하나는 극한투쟁이다. 정관계나 노사계나 교육계나 종교계를 막론하고 무슨 문제가 생기면 평화롭게 해결하기보다는 극한투쟁을 함으로써 양측이 다 손해를 보아왔다.

우선 정치권을 살펴보자. 세월호 사건과 같은 참사를 당하고도 한국 정치권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다. 국민으로서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이유들 때문에 빨리 처리해야할 법률들을 처리하지 않고 뒤로 미뤄놓거나 질질 끌고 있다. 이른 바 김영란 법도 그렇고 세월호 관계 특별법도 그렇다. 속히 필요한 법이라면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보아 법을 집행하는 것이 법이 없는 것보다는 좋을 것이다.

김영란 법은 이명박 정부 때에 발의되고 일년쯤 전에 국회에 제출된 법안인데 세월호 사건 이후 속히 처리해야 할 법이라고 여야가 합의해서 다시 논의된 법안이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사회에 편만해 있는 뇌물수수 관행 때문이므로 이를 원천적으로 끊어버리자는 취지에서 여야가 속히 추진하기로 한 것인데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그 법의 강도 때문에 여야가 서로 고집을 부리는 모양이다.


한국의 뇌물관련 법 가운데 내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이해관계가 있는 관리와 업자 사이에 돈을 주고받았을 때에 검찰이 소위 ‘대가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해가 상충되는 위치에 있는 관리나 권력자가 돈이나 선물을 받았으면 당연히 그 쪽에서 이해상충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것 아닌가.

어쨌든 현행법으로는 뇌물수수를 막을 수 없으므로 하루속히 김영란 법을 통과시키는 것이 마땅하다. 뒤로 미루는 것은 국회의원들과 공직자들의 속이 컴컴하다는 증거 밖에 안 된다. 영국 의회는 여자를 남자로 바꾸고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 말고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한국 국회는 단상으로 달려가 몸싸움은 잘하면서도 왜 법률 하나 제 때에 통과시키지 못하는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러 달씩 국회도 열지 못하고 내각도 조직하지 못하고 극한대치를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서야 여러 법을 한데 뭉쳐 졸속으로 통과시키는 행위는 국민의 이익은 뒤로 하고 자기 당의 이익만 얻자고 그러는 것 아닌가.

애플파이가 아니라면 펌킨파이라도 국민에게 먹여주어야 하는데 국민을 위한다는 핑계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며 애플파이고 뭐고 길바닥에 엎어버리는 행동은 동내 망나니들도 하지 않는 짓거리다.

노동계는 어떠한가. 툭하면 머리에 띠를 두르고 주먹을 휘두르며 공장을 뛰쳐나와 장대 깃발을 휘날리며 거리로 광장으로 몰려다니는 것은 100년 전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때 노동자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때까지의 경우를 보면 일반 노동자들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 힘 있는 노동조합들이 자신들의 생산성 향상보다 더 높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소란을 피우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며 얼마나 빡빡한 임금을 받고 있는지 잘 안다. 그러나 어느 나라 노동자는 아니 그러한가. 애플파이가 아니면 펌킨파이라도 먹어야지 공장을 멈춰놓고 거리로 뛰어나오면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사주 쪽만 아니라 노동자들이다. 거리로 뛰쳐나올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요구가 정당함을 논리적으로 전개하여 사측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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