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4-07-17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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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렁물렁한 것이 떨어져나가고
딱딱한 것만 남아 있다
텅 비어 열린 곳에는 모래들이 흘러들었다

이 조개껍질 속에 한 때
고독한 삶이
있었다

웅크리면서 펼치는
우주적인 우연성의 무늬들이 있었다


그 무늬를 빚은 질료들의 목록:
산호뿌리, 끄덕 새우 껍질, 말미잘 똥, 등등
물론 거기에 반죽과
연금술이 필요했을 것이다

- 최승호 (1954- ) ‘조개껍질1’ 전문


깃들어 살던 생명은 떠나가고 껍질만 남은 것들. 무상의 견고함에 이르기까지 산 것들은 수없는 비상을 꿈꾸었으리라,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신이라는 이름으로. 꿈꾼다는 것은 얼마나 따스하고 고단하며 또 고독한 일인가. 아주 작은 우주를 열고 닫던 조개의 생애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하니 바람과 모래를 받아들이는 텅 빈 허허함은 삶이라는 고독한 연금술이 만들어낸 빛나는 침묵이라 할 수 있으리.

- 임혜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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