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주 고등학교들은 졸업 잔치로 분주했다. 처음 유치원에 입학했던 꼬마가 13년 동안 부모와 선생님들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 ‘진짜’ 세상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는 벅찬 시간이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설렘과 부모 슬하를 떠나는 자유를 느끼는 동시에 익숙하고 안전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혼자 살아야하는 책임감과 두려움이 교차되는 시간이다.
한국문화에서는 자녀들이 다른 도시로 유학을 가지 않는 한 보통 부모와 결혼 전까지 함께 산다. 결혼 후에도 친정 가까이 살면서 살림과 육아의 도움을 받으며 딱히 부모를 떠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학교를 졸업하고 18살이 되면 부모를 떠나는 것을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자녀가 대학에 진학할 경우 부모는 기본적인 살림을 준비하여 대학으로 떠나보낸다. 대학을 가지 않는 경우도 직장을 잡으면 방을 얻어 나가거나, 집에 머물 경우 방값을 지불하기도 한다.
어떤 모양으로 부모와 집을 떠나든 자녀는 언젠가는 부모를 떠나 한 독립적인 인격체로 살게 된다. 적당한 시기가 되면 자녀는 떠나야 하고, 부모는 보내야 한다. 그러나 내담자들 중에는 부모를 떠나지 못하거나, 반대로 자녀를 못 떠나보내서 결혼 후에도 부부관계나, 시댁 또는 친정과의 얽힌 관계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종종 본다.
사춘기를 지나며 아이들은 자아를 성립하게 되고 부모로부터 심리적인 독립을 준비한다. 그러나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자녀가 나의 존재감과 행복의 중심이며 삶의 목적인 부모의 경우, 자녀를 보내는 일이 자신의 존재감과 삶의 목적의 상실이기 때문에 떠나보내지 못한다. 이런 부모들은 자녀들이 저야 할 짐을 대신 저주며,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 해결사의 역할을 한다.
“넌 내가 필요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며 스스로 “난 필요한 존재야”란 존재감과 위로를 느낀다. 이런 부모들은 자녀가 떠난 후 ‘빈둥지증후군’으로 힘들어 할 수 있으므로, 자녀 대신 자신의 존재감과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 꼭 필요하다.
또 어떤 부모는 자녀에게 자신들의 어려움을 계속 호소하고 연민과 죄책감을 유발하는 말을 함으로써 자녀가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두 가지 모두 자녀가 부모를 떠나 독립적인 인격체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행동이다.
큰 아이를 떠나보내며 아이가 7학년 때 한 말이 떠올랐다. “이제 우리가 함께 살 날이 6년 남았네. 그 후에는 네가 집을 떠나 혼자 살아야하니까 앞으로 6년 동안 네가 혼자살 수 있도록 가르쳐주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사춘기를 시작한 아이는 언젠가 부모를 떠나 혼자 살 거란 말이 좋았는지 흔쾌히 승락하였다. 그 이후 밥하는 법, 빨래하는 법, 전구와 에어필터 가는 방법 등 크고 작은 집안일들과 가족 구성원으로써의 책임을 하나씩 가르쳤다.
10학년부터는 은행구좌를 열어 돈을 쓰고 관리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였으며, 아직 내 품에 있을 때 실수를 통해 ‘진짜’ 세상을 살아가는 교훈을 얻도록 도와주었다. 매년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이제 5년만 살면 떠나네” “ 와~ 딱 3년 남았구나”라고 남은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어차피 평생 끼고 살 수 없다면 자녀도 행복하고 부모도 행복한 ‘잘 떠나보내는 방법’을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