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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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14) 목동 ‘다윗’의 돌팔매질에 넘어진 거장 ‘골리앗’

2014-06-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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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환>

결과만 두고 말하자면 이번 글의 제목을 ‘거장 골리앗을 돌팔매질로 넘어뜨린 다윗’이라고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제목을 달리 썼더라면 말의 맛은 둘째로 치더라도 강조점이 ‘다윗’에게 쏠리게 되었을 것이다. 필자는 엄청난 역경을 극복하고 독립을 쟁취한 미국사람들의 위대한 투쟁을 눈곱만큼이라도 깎아 내리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아무래도 미국의 독립은 영국이 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구약성경에 의하면 골리앗은 넘어졌을 뿐만 아니라 다윗에 의해 자기 칼로 목까지 잘리운다.

아래 적는 1775년부터 1782년까지에 이르는 미국의 독립전쟁사를 보면 북미주의 한 귀퉁이에 있던 ‘콩알만 한’ 열세개의 식민지 주들이 전 세계 6대주에 해지는 시간이 없도록 광활한 식민지들을 가지고 있던 대영제국을 넘어뜨려 보려는 생각은 애초에는 해보지도 않았었다. 만일 골리앗이 교만하고 어리석게도 유태인들을 조롱하고 위협하지 않았었더라면 아마 다윗은 돌팔매질 잘하는 목동으로 일생을 마쳤을 것이다.


다윗은 위협에 못 이겨 나섰다가 기적을 이루게 되었었다. ‘자의반 타의반’이 아니고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영국은 미국을 깔보고 교만했었다. 미국에는 계속 영국국민으로 남아있고자 한다는 Loyalist들이 많아서 전쟁이 일어나면 Loyalist들이 영국을 도울 것이라는 오판을 하고 있었다. 자국 군대의 ‘충성심’만 과신했지 식민지인들의 ‘저항심, 애국심’등은 과소평가 했었다.

미국의 지리도 잘 모르는 어설픈 전략으로 전쟁을 시작만 하면 곧 이길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영국의 숙적이던 불란서와 스페인의 앙심도 잘못 읽고 있었다. 동서남북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모르는 채로 참전했던 영국군들은 몇 번의 미국군들의 게릴라 습격에 혼쭐이 나간 후 미국군을 겁내기 시작하였고 지휘관들도 연속적으로 전략상의 실수를 저질렀다. 영국이 질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었다. 장수 하나 넘어트리는데 대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잘 겨냥한 돌팔매 하나면 충분한 것이다.

이 무렵 Washington장군의 가장 큰 임무는 Continental Army를 모병하고 유지시키는 것이었다. 자기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Washington 장군은 “미국 정규군을 유지하지 못하면 독립전쟁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이라고 말했다. 13개의 주정부에서는 한 푼도 돈을 보내주지 않았고 매일 가치가 떨어지는 Continental dollar를 찍어서 썼는데 이 화폐 받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당시에 무슨 물건이 ‘가치가 전혀 없다’라고 표현하려면 ‘not worth a Continental!’ 이라고 말했었다고 한다.

이런 역경 속에서 미국군대를 유지한 것은 Washington 장군의 탁월한 인화력과 통솔력의 덕택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립전쟁 초기였던 1776-1778년간에는 주로 북부의 주들에서 전투가 진행되었었다. 그러나 1779-1781년 사이에는 전장이 남부 주들로 옮겨졌었는데 영국은 그쪽 주들에 Loyalist들이 많아서 전투를 도와줄 것이라고 착각하고 남부 주들을 전부 정복하고 그 후에 북부 주들을 탈환하면 된다고 생각하였던 탓이었다.

Washington장군은 영국군이 Boston을 철수한 후 New York 시를 공격해올 것으로 예상하고 군대를 Long Island로 이동시켰다. 영국군은 1776년 7-8월동안 Staten Island에 군인 35,000명을 주둔시켰는데 당시 New York 시민이 23,000명밖에 되지 않을 때이고 Washington은 대부분이 민병대인 총병력 25,000명을 가지고 있었었다.

영국의 Howe장군은 1776년 8월 20-25일 사이에 영국군 2만 명을 Long Island에 상륙시켰고 8월 27일의 전투로 미국군에 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Howe 장군은 이 Long Island 승전의 공로로 영국에서 작위를 받았다. 미국군은 안개 낀 새벽에 East River를 건너서 Manhattan으로 갔다가 다시 New Jersey로 후퇴하였는데 9월 15일에 영국군은 미국군을 바짝 쫓아왔다.

1776년 11월 미국군은 New Jersey 남부 끝까지 후퇴하였는데 미국군은 대부분 민병대원으로 많이들 집으로 가버렸으며 얼마 되지 않은 정규군Continental Army는 1776년 말이면 일 년의 복무연한이 끝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영국군에 쫓기어 Washington 장군이 Delaware 강을 건너 Pennsylvania로 후퇴하는 중에 영국군은 Trenton으로 들어왔다. Washington 장군은 Pennsylvania로 부터 2천명의 민병대 지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총 8천여 명의 병력밖에 없었다. 이때가 독립 전쟁 중 미국군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1776년 12월24일 밤 극도로 추운 폭풍우속에 Washington 장군은 2,400명의 군인들을 데리고 Delaware강을 건너 Trenton으로 들어가서 25일에 전날의 Christmas Party로 곯아떨어져 자고 있던 영국 용병들을 기습하여 미국군 전사자가 네 명은 있었으나 영국용병들 9백 명을 포로로 생포했다.

Washington 장군은 그 후 Cornwallis 장군휘하의 영국군 주력부대를 Princeton 에서 후방 기습하여 크게 분쇄시켰다. 이 10일간의 전투패배로 영국군은 New Jersey에서 New York으로 완전 철수하였다. 이 전투들은 미국이 영국군에게 완전히 승리한 전투들이었다.

한동안 전쟁은 소강상태에 있었으나 영국군은 1777년 여름에 미국의 New England지역과 남부지역을 차단하기 위하여New York 주 Albany에 3개의 군이 집결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Montreal 에서 내려오던 첫째 영국군은 도중에 미국군의 게릴라전투에 패배하였고 Howe 장군이 지휘하던 둘째 군은 엉뚱하게 Philadelphia 를 점령하였다. Burgoyne 장군이 지휘하던 셋째 군은 미국군들의 게릴라식 공격에 밀려서 New York 주 Saratoga 로 후퇴했으나 전면을 미국군에 포위당하자 1777년 10월 17일에 미국군에게 항복했다. 이 Saratoga 의 승전은 미국 독립전쟁의 방향을 승리 쪽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미국의 독립전쟁을 은밀히 지원해오던 불란서는 1778년 2월 7일에 미국과 동맹조약을 맺으며 공개적으로 독립전쟁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불란서의 금전, 군대, 군수물자, 강력한 해군지원 등은 미국의 독립을 보장해주는 것이나 같았었다. Pennsylvania의 Valley Forge 에서 엄청난 역경 속에 Continental Army를 훈련시키고 있던 Washington 장군은 이 기쁜 승전의 소식을 들었다.

다급해진 영국군은 전략을 바꾸어 남부 주들을 먼저 점령하기로 하였다. Howe 장군의 후임으로 온 Clinton 장군은 Philadelphia 를 포기하고 New York 시로 후퇴하던 중 New Jersey 의 Monmouth 에서 1778년 6월 28일에 Washington 장군의 습격을 받았다. 이 전투는 무승부로 끝났다. 이후로 영국군은 기습을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New York 시를 떠나지 않았고 북부에서의 전쟁은 여기서 끝난 셈이 되었다.

전쟁은 다시 소강상태에 들어갔으나 미국군은 서부지역에서 영국군을 게릴라작전으로 계속해서 습격하여 1779년 2월경에는 서부지역을 영국의 통치에서 사실상 해방시켰다. 그러나 1778년 12월 17일 영국군은 Georgia 주의 Savannah를 점령하고 곧 이어 Georgia주도 영국의 손에 넘어갔다. 이때의 전투 중 Poland 에서 미국을 도우러 와서 미국의 기병부대를 창설한 Pulaski 장군이 전사했다. 1780년 5월에는 영국군 Clinton 장군이 South Carolina의 Charleston 을 점령했으나 미국의 Continental Army 와 민병대는 곳곳에서 게릴라전투로 영국군을 꾸준히 괴롭혔다.

미국군은 Cornwallis 장군 휘하의 영국군을 계속 습격하자 그들은 Virginia 주의 해변도시인 Yorktown 으로 밀려갔다. Cornwallis 군은 불란서 해군의 참전으로 북부의 영국군으로부터 차단이 되고 남쪽으로는 불란서군의 협력을 받은 Washington장군의 군에 완전히 포위가 되어서 1781년 10월 19일에 드디어 미국군에 항복했다.

Cornwallis 장군의 휘하에는 정규군 7,750명, 해군 850명, 대포 244문과 모든 군수물자들이 있었으나 그것들을 미국에게 모두 빼앗겼다. Yorktown 패전소식을 들은 당시의 North 영국수상은 “My God! It is all over!” 라고 외쳤다고 한다. 독립전쟁은 미국 측의 Yorktown 승리로 사실상 완전히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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