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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일원 가볼만한 곳 완전정복/ 월도프 아스토리아

2014-06-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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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rban’ 기치 아래 호텔 산업발전 주도

5번가의 화려한 이름을 대내외에 널리 각인시킨 인물은 존 제이콥 애스터였다. 다운타운 애스터 플레이스 발전에도 크게 기여한 그는, 19세기 초 미국을 대표하는 부자였다. 당시 그에게는 사랑스러운 증손자가 둘 있었다. 훗날 영국 귀족이 된 첫째 윌리엄 월도프 애스터와, 경영적 수완이 뛰어난 둘째 윌리엄 애스터 2세가 그 주인공이다.

■ 형제간의 알력을 치유하며 완성되다
이 가운데 둘째가 애스터 일가의 가업을 이었다. 그는 19세기 말 34번가 5애비뉴(현 ESB 자리)에 브라운스톤 호저를 짓고 살았다. 하지만 1893년 그 때까지 잠잠하던 첫째 월도프 애스터는 동생 가족에 대한 불만을 폭발시킨다. 자신이 장손임에도 집안의 상속 순서에서 밀려난 데 앙심을 품은 것이다. 그로 인해 불만을 누적시켜오던 월도프 애스터는 동생의 호저 바로 옆에 13층짜리 호텔을 지었다. 월도프 호텔이다.

그러던 1897년 이번에는 동생 가족이 반격에 나섰다. 캐롤라인의 아들 애스터 4세(훗날 타이타닉호 사고로 세상을 떠난)가 기존 집터에 16층짜리 호화 호텔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이름을 아스토리아 호텔로 짓는다. 바로 길 하나 건너에 같은 집안의 호텔이 나란히 들어선 것이다. 이는 형제간의 뿌리 깊은 불신이 낳은 산물로, 둘은 물불 가리지 않는 경쟁에도 나섰다.


바로 그 때 묘안이 등장한다. 양 집안이 믿을 수 있는 이를 관리자로 세워 두 호텔을 통합 관리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오랜 기간 집안의 집사역을 맡아온 조지 볼트가 사장을 맡았다. 이것이 현재까지도 뉴욕의 대표 호텔로 첫손에 꼽히는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Waldorf-Astoria Hotel)’ 탄생의 계기가 된다.

■ 새로운 비전을 그린 월도프 아스토리아
통합 후 볼트에 의해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은 비로소 새로운 비전을 그릴 수 있었다. 뉴욕 최고급 호텔을 목표로, 당시로서는 드물게 ‘Urban’이라는 가치를 내세웠다. 또 도시의 세련미를 강조하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도 적극 사용되었다.

당시 유명인사들을 적극 유치한 것은 물론, 객실 디자인은 심플하면서도 기능적인 디자인을 다수 차용했다. 이에 더해 다양한 사회적 이벤트를 개최해 세간의 트렌드를 이끈다는 이미지를 전달한 것은 물론, 토니상과 NBA 신인 드래프트 개최지로도 이름을 올렸다. 게다가 ‘세계 최초로’ 룸서비스라는 개념을 도입시켜 이후 호텔 산업 발전에 커다란 힌트도 제공한다.

이 외에도 이 호텔은 수많은 셀러브리티들을 매료시킨다. ‘리얼리티 스타’ 패리스 힐튼이 그녀의 가족과 어린 시절 이곳에서 거주한 것은 물론, 마릴린 먼로는 영화 ‘7년만의 외출(The Seven Year Itch) 촬영시 이곳을 숙박처로 택했다.

또한 후버 대통령과 한국전에서 이름을 드높인 맥아더 장군도 한 시기 이곳 스위트룸에 묵었다고. 이러한 유명인들의 기억에 더해, 호텔의 오랜 역사는 지금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다. <이수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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