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6월의 붐’

2014-06-26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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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은 한국 축구에 악몽의 날이었다. 월드컵 H조 최약체로 평가했던 알제리에 참패를 당하며 세계 축구팬들의 조롱거리가 됐다. 반면 같은 날 미국 축구는 강호 포르투갈과 엎치락뒤치락 하는 명승부를 펼치며 축구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미국 팀은 세계 최강 수준에 근접한 실력을 보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첫 경기에서 아프리카의 강호 가나를 2대1로 꺾더니 포르투갈과는 대등한 경기를 벌였다. 미국 팀의 선전은 응원 열기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경기는 연일 축구 중계 기록을 깨고 있다. 22일 ESPN과 히스패닉 채널인 유니비전을 통해 포르투갈과의 경기를 본 미국인은 2,470만명(ESPN만 1,820만명)에 달했다. 이는 미 사상 최다 축구시청 기록으로, NBA 파이널과 프로야구 월드시리즈 시청자 수를 넘어선다. 중계 방송사들로서는 좋아서 입이 찢어질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TV 시청뿐 아니라 대도시 곳곳에서 열린 거리응원에는 수만명의 인파가 몰려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또 스포츠 바도 미국 경기를 보려는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예상외로 미국 내 월드컵 열기가 달아오르자 일부 언론들은 이를 대학농구 토너먼트인 ‘3월의 광란’과 비교하기도 한다. 시카고트리뷴 같은 신문은 월드컵 열기를 이에 빗대 “미국에서는 지금 ‘6월의 붐’(June boom)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축구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지만 미국에서는 아직 주류스포츠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풋볼과 농구 등의 인기에는 크게 뒤져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 열기가 예상외로 달아오르면서 축구가 주류스포츠에 한걸음 더 다가서게 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브라질 월드컵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이 뜨거운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 팀의 선전을 들 수 있다. 성적이 좋으면 자연스럽게 축구 팬들의 성원도 뜨거워지기 마련이다. 아직 16강을 확정짓지는 못했지만 유리한 고지에 올라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브라질과 미국의 시차가 거의 없어 밤낮이 뒤바뀌는 일 없이 경기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인기에 한 몫하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들 가운데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7,000만명이 넘는다. 상당히 넓은 저변을 확보하고 있다. 최근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는 미 프로축구리그인 MLS의 마케팅 구호는 ‘클럽과 국가를 위해’(For Club and Country)이다. 현재 월드컵에서 뛰고 있는 미국 팀은 MLS 선수들을 주축으로 구성돼 있다. ‘6월의 붐’을 애국심 마케팅으로 연결해 축구 중흥을 꾀하겠다는 의도다.

한국과 미국의 16강 진출여부가 열린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가 오늘 벌어진다. 미국 팀에게 이번 월드컵은 축구의 인기를 확실하게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축구계의 파워하우스인 독일과의 경기는 그래서 결코 물러 설 수 없는 한판이 되고 있다.

벨기에와 맞붙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으로서는 16강 진출이 문제가 아니다. 알제리 전 참패로 형편없이 구겨진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되살리는 것이 급선무이다. 16강에 너무 목매지 말고 벨기에와 멋진 승부를 펼쳐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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