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4-06-2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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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안에 살던 푸른 짐승이
바이올린을 켠다

바다로 흐르지만, 결코 바다가 되지 못하는 오카방고 습지의
수천 마리 물소 떼며, 코끼리떼
기나긴 건기, 사자들에 대해

흰꼬리수리의 기나긴 비행과


그들이 건넌 낮과 밤에 대해

살아 있는 화석인 투구게의 질긴 눈망울에 대해 생각한다

삶을 관통하는 수많은 그늘에 대해

늘 맹목이었던 빛에 대해

툭툭 놓아버렸던 힘없던 팔들에 대해

오래 생각한다

푸른 짐승의
속 울림이 맑게 흐른다.


- 하보경 (시사사 등단) ‘가문비나무’ 전문


가문비나무는 첼로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의 앞판을 만들 때 쓰인다고 한다. 시인은 바이올린소리를 들으며 가문비나무 속에 깃들었던 작은 우주를 생각한다. 그 안에는 화석이라 불리는 투구게의 긴 시간이 있고 방대한 공간도 있다. 자작나무의 일생을 스쳐간 바다며, 시간이며, 빛이며, 어둠 그리고 뛰어놀던 짐승의 숨결을 듣는다. 연주자의 손에서 다시 태어나는 나무의 생애, 아주 작은 우주를 스쳐간 슬픔과 기쁨이 맑게 울려나고 있다.

-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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