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4-06-19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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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 있다.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예수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바라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2
술 취한 저녁, 지평선 너머로 예수의 긴 그림자가 넘어간다. 인생의 찬 밥 한 그릇 얻어먹은 예수의 등 뒤로 재빨리 초승달 하나 떠오른다. 고통 속에 넘치는 평화, 눈물 속에 그리운 자유는 있었을까. 서울의 빵과 사랑과, 서울의 빵과 눈물을 생각하며 예수가 홀로 담배를 피운다. 사람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을 보며, 사람들이 모래를 씹으며 잠드는 밤. 낙엽들은 떠나기 위하여 서울에 잠시 머물고, 예수는 절망의 끝으로 걸어간다.

- 정호승 (1950- ) ‘서울의 예수 1, 2’ 전문



만일 서울에 예수가 살아있다면, 그는 어디에 계실까. 지극히 인간적인 사회주의자 예수. 화자는 가난한 자의 빵과 사랑과 눈물 속에서 예수의 모습을 본다. 그를 섬기고 그에게 복종한 이들이 모두 슬프고 불행한 도시에서 예수는 차디찬 구치소 벽에 기대어 울고 있다. 대체 구원은 있는가. 저 절망 속 어딘가 필시 구원도 있으리라.

-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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