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동’과‘의도’에 대하여

2014-05-22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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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수 / 언어학 박사

여러 날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월호에서 단 한 명도 구조해내지 못한 정부를 비판하면 “불순한 의도로 선동하지 말라”는 날선 반응들이 쏟아지는 요즘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의 목소리와 표정은 대개 더없는 확신으로 가득하다.

솔직히 말하자. 이 세상에 ‘의도’가 없는 행위가 몇 가지나 존재할까? 생명유지를 위한 1차적 활동과, 역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나오는 반사행위 같은 것들을 제외하면, 인간이 하는 나머지 모든 언행들의 밑바닥에는 반드시 어떤 의도/동기가 자리한다. 본인이 그것을 의식하든 못 하든.

더 중요한 것은, 의도라는 것은 객관화와 증명이 불가능하기에 남을 재단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라는 것이 법적으로 성립하기는 하지만, 이때도 살인이라는 ‘결과’가 나타났기에 죄가 되는 것이지 갑이 을을 죽이고 싶어 한다는 ‘의도’만으로는 살인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말이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그를 비판할 수 있는 근거는 그의 의도가 아니라, 그 사람이 제시하는 근거의 정확성과 근거-주장 사이의 논리적 필연성 두 가지 뿐이다. 사람들의 감정적 반응이 어떨지, 그 사회 정치적 결과가 어찌 될지는 별개의 문제이고 말이다.

“선동하지 말라”는 비판 역시 두 가지의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선동’(煽動)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부추겨 어떤 일이나 행동에 나서도록 함’이다. 즉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의 “잘 살아보세” 구호도 선동이고,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도 선동이며, 아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하는 것도 선동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특정 이슈에 대한 논의만을 ‘불순한 선동’으로 몰아붙이는 기만과 위선을 저지른다.

더구나, 대한민국 헌법 제 21조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하자”는 얘기 없이 사람들을 모을 수 없고 그런 주장 없이 집회도 의미가 없으니, 헌법에 명시된 집회 결사의 자유 자체가 바로 “선동을 허용 한다”고 해석해야하는 것 아닐까?이렇듯, 언어학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는 ‘선동’이라는 개념을 자신의 주관적 호불호에 근거하여 타인의 언행을 제어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일이야말로 ‘불순’한 것 아닌지 묻고 싶다.

예수가 유대 지배체제의 중심인 성전을 뒤엎은 것은 당시로서는 분명 ‘정치행위’였고, 십자가형에 처해진 것도 그가 민중을 ‘선동’했기 때문이었다. “Injustice anywhere is a threat to justice everywhere” “사회적 전환기에서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 이라는 등의 말로써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도 분명 ‘선동가’였다. 그러나 현재 이 분들은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들이다.

그러니 기억하시라. ‘옳은 소리’를 하다가 핍박받고 목숨까지 잃은 예수를 삶에서 실천하지는 못 할지언정, 다른 사람의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불순한 의도’ ‘선동’ 운운해가며 침해하는 것은 위헌일 뿐이라는 사실을. 한국과 미국은 절대 왕정국가가 아니라 민주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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