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 한 사람을 가졌는가?

2014-05-06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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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니카 이 / 심리 상담사

“탔던 배가 가라앉을 때, 구명 배를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세월호 사건으로 유족들과 온 나라가 애도하고 절규하고 있다. 함석헌 선생의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의 싯귀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구명 배를 내주어도 조금도 아깝지 않을 ‘그런 그 사람’을 많은 부모들은 통곡하며 가슴에 묻어야 했다.

사랑하는 이를 잃는 슬픔과 고통의 깊이를 감히 측량할 수 없다. 특히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어떤 이는 “신이 언어를 만들 때 남편을 잃은 아내는 ‘과부’ 아내를 잃은 남편은 ‘홀아비’ 부모를 잃은 자식은 ‘고아’라 정하였으나 자식을 잃은 부모는 그 슬픔이 너무 커서 아무런 호칭을 짓지 못했다”고 말했다. 남겨진 자들이 짊어지고 가야할 가늠할 수 없는 억울함과 고통의 무게가 미리 느껴져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남겨진 유족들의 아픔과 고통만큼이나 염려되는 것은 사고 현장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사람들이다. 사고현장에서 겪은 공포와 충격뿐만 아니라, 배에 올랐으나 함께 구조되지 못한 친구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온전히 치유되고 회복되지 않으면 극심한 불안과 우울증으로, 살아 있으나 죽음의 골짜기를 걷는 삶을 살 수도 있어 더욱 안타깝다.

‘트라우마’라고도 불리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Stress Disorder, PTSD)는 신체적인 손상과 생명의 위협을 받은 다양한 사건(죽음, 사고, 성폭력 등)의 정신적인 충격 뒤 나타나는 질환이다. 신체적인 문제는 없어 보이나, 충격적인 체험에 의한 쇼크는 뇌 속에 영속적인 생화학적 변화를 가져와 심각한 후유증을 유발한다.

살면서 우리는 세월호 사고나 쓰나미 같은 거대한 트라우마 외에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망, 이별과 배신, 가정 폭력이나 성폭행 등은 원치 않으나 피해 갈 수 없는 일상으로 깊은 상처와 아픔을 남긴다.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첫 단계는 그 사건에 대해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상처의 이야기가 목구멍을 넘어 입을 통해 고백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때론 2~-30 년이 넘게 걸릴 수 있는 힘든 작업임을 만나는 내담자들을 통해 배웠다.

언제고 편히 찾아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아무 편견 없이 깊은 공감으로 들어줄 ‘그 한 사람을 가졌는지’ 묻고 싶다. 마음의 솔직한 감정을 숨김없이 다 드러내도 수치스럽거나 부끄럽지 않은 그 한 사람을 가졌는지, 어떤 이야기를 해도 비밀이 지켜지는 안전한 장소나 사람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

떠오르는 친구나 멘토, 가족이나 종교지도자가 있다면 당신은 참 복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자신의 아픔을 고백해서 가까운 사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들을 가끔 만난다. 그렇다고 상처와 아픔을 그냥 가슴에 묻어둔 채 산다면, 그것은 정신적인 건강 뿐 아니라 육체적인 건강까지 해칠 수 있어 위험하다. 그때는 전문 상담기관을 찾아가서 도움을 받기를 권한다.

조국 안산에도 트라우마 센터가 설립되고 학교에 상담센터와 함께 전문상담사들이 투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작은 안도감을 내쉬었다. 이제는 남겨진 이들을 위한 회복과 힐링이 나라와 사회의 지속적인 경제적 지원과 후원으로 멈추지 않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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