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환>>
콜럼버스 는 미대륙 역사의 분기점에 서 있던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욕심, 끝을 모르는 탐험심, 영웅 같은 용기가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해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착각으로 뚫어놓은 작은 구멍은 상상할 수 없이 많은 물을 저장하고 있던 땜을 얼마가지 않아 무너지게 만들었고 쏟아져 나온 물은 아무도 걷잡을 수 없이 온 세상을 뒤바꾸어 놓았다. 온 세상의 지형이 바뀌고 많은 동식물들이 죽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새 질서가 생겼다.
미국의합법적인 원주인은 누구일까? 제일 먼저 와서 말뚝을 박은 원주민들일 것이다. 그러나 등기소도 없던 때에 박아놓은 작은 말뚝인지라 나중에 온 힘이 더 센 자들이 더 큰 말뚝을 박을 때에 싸워서 자기 말뚝을 지키지 못하고 어느 기간이 지나버리면 늦게 온 자들이 합법적인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 자연법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무법천지 시절도 있었다.
미국의 경우에도 땅을 넓혀 가는데 인디언들과의 국제조약, 구입, 약탈, 강제이주 등의 모든 방법이 총동원 되었었다. 이렇게 미대륙의 원주인은 바뀌고 말았다. 남북미대륙의 백인지배는 이와 같은 원죄로 부터 시작되었다. 백인들은 유럽에 식량이 떨어지고 사냥할 짐승도 거의 없어져가고 잡아먹을 물고기조차 귀해지는 가운데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대하던 절망적이었던 때에 미대륙의 발견으로 많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버리게 되는 횡재를 하였지만 미대륙의 원주민들은 백인들을 “발견”하자마자 땅을 뺏기고 노예가 되고 전염병을 얻으면서 자기들의 문화는 말살되고 자연신을 믿던 종교는 뿌리째 뽑힘을 당했다.
빙하기 말기인 2만-3만여년 전에는 얼음이 아주 두껍게 얼었던 탓에 바다의 수면이 내려가서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에 있는 베링해협이 56마일 정도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중앙아시아에서 몽고인들이 들소 낙타 맘머스 등을 사양하며 따라오다가 베링해협을 건너서 알라스카에 왔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4세대이면 100년이 되는 것을 기준으로 대강 어림잡아보니 우리와 1700촌쯤 되는 사람들이 원주인이었던 이 땅에 우리 한국인들도 지금 이주해 와서 살고 있는 셈이 될 것 같다. 남북미의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몽고족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점차 남진하기 시작해서 남북미 전체에 퍼져 살고 있었는데 BC 9천년쯤에는 남미 끝까지도 도착했을 것이라고 한다. 백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1500년경에는 멕시코 이남의 미대륙에는 2천500만 명, 지금의 미국과 캐나다에는 백만 명 정도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콜럼버스 가 미대륙에 오기 500여 년 전에 노르웨이 사람들이 뉴펀들랜드 등지를 다녀갔고 잠시 동안 와서 살아보기도 하였지만 다른 유럽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모양이고 중국에서는 자기나라 장군인 Shen Lee 라는 사람이 콜럼버스 보다 6년 전에 미대륙에 갔다 온 기록이 있다고 주장한다는 얘기도 있고 중남미에서 나온 토기의 문양이 일본 어느 지역의 토기와 아주 유사하다고 해서 일본인 왕래설까지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사실들의 진위와는 상관없이 미대륙은 콜럼버스 때 까지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왜 몽고족뿐이었을까. 다른 여러 민족들도 비슷한 경위로 미대륙에 건너 왔을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작은 부족국가들을 이루고 서로 왕래 없이 살았던 탓인지 북미에만도 수백 종의 다른 언어가 있었다고 한다. 기후 탓이었던지 북미주 남쪽과 남미주 북쪽에 많이들 살고 있었던 모양인데 북미주 원주민들은 한두 부족을 제외하고는 남미대륙 원주민들보다 문화적으로 많이 뒤쳐져서 원시적인 수준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듯하다.
남미주에는 멕시코 일부, 과테말라, 온두라스, 벨리즈 등으로 구성된 마야제국이 있었는데 이들은 문자도 가지고 있었고 큰 사원들과 이집트 것보다 더 큰 피라미드를 지었으며 천문학도 꽤 발달되어 있어서 정확한 달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페루가 주축이 되는 잉카제국은 문자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건축술이 아주 발달되어서 지금 남아있는 500여 년 전의 석조건물들을 철기도 없던 사람들이 면도칼로 버터를 잘라낸 것처럼 돌들을 잘라서 시멘트 같은 접착제를 쓰지 않고도 지어 놓았다.
페루에는 지금까지 누구나 가보면 놀라자빠질 Inca 유적들이 많은데 필자가 가본 스페인들에 의해 파괴되지 않고 남아있는 마추피추 산성은 높은 산 중턱을 깎아내서 지은 인구 500명 정도의 상수도 시설까지 되어있는 작은 도읍으로 구름위에 떠있는 것처럼 신비한 곳이었다. 고산지대에서 살던 이 사람들은 어떤 곳에는 산을 100층까지 계단식으로 개발하여 밭으로 만들었으며 원래는 야생풀이었던 옥수수를 곡식으로 개량하였다.
잉카제국은 감자와 토마토의 원산지라고도 하는데 벌서 오래전부터 감자의 장기저장법을 개발해 놓았다. 감자의 껍질을 맨발로 밟아 완전히 벗긴 후 우리나라에서 황태를 만드는 것처럼 추운 겨울에 얼렸다 말리고 다시 얼렸다 말리는 방법으로 나중에는 돌멩이처럼 단단해진 감자를 ‘츄니요(Chuno) 라 부르는데 이 츄니요는 계절에 상관없이 상하지도 않으며 발아하지도 않아서 곳간에 저장해두고 일 년 내내 주식으로 먹는 현명한 저장법도 개발해 놓은 것이다..
또 하나의 다른 남미의 나라가 아즈텍 왕국인데 호전적인 나라이었으나 위에
언급한 두 나라와 비슷한 수준의 문화국이었다. 이들 남미의 국가들이 전부 금 은 세공기술이 아주 발달하였었고 지금도 박물관에 남아있는 토기와 도자기 등을 보면 디자인도 아주 발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페루의 리마에 가면 박물관에 Sala Erotica 라는 ‘성예술’ 전시관이 있는데 남녀의 애무, 성교, 성기 등을 크게 과장해서 유머러스하고 에로틱하게 금.은 붙이나 토기. 도자기 등으로 조각해 놓았고 남성의 성기도 사람의 키 절반정도의 크기로 만들어 놓았는데 이것들은 당시의 사람들이 현대인들도 미처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의 예술 감각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예술을 창조하고 감상할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바다로 항해할 수 있는 크기의 배를 만들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음으로
외부세계와 단절되어있었던 까닭에 모방하는 문화를 받아드리지 못하여 끝까지 바퀴를 써보지 못하는 등 모든 문화와 기술이 자생적으로 시작되고 개발되었을 것이다. 철기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었지만 어떤 왕궁들의 벽은 금으로 씌워놓기도 하였다는데 이런 것들이 나중에 스페인 약탈의 목표물들이 되었다고 한다.
북미주에는 지금의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지역에 있었던 Anasazi 부족들이
살았는데 이들은 Pueblo라고 불리는 돌과 진흙으로 지은 4-5층짜리 apartment 형식의 집으로 불청객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서 사다리로 올라와야 되는 입구가 하나만 있는 건물에서 살았으며 적의 침입방지를 위해 절벽에 집을 짓고도 살면서 고도의 금 은 세공술을 가지고 있던 이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원시생활 수준으로 살았던 듯하다.
캘리포니아에 당시 북미주인구의 10% 정도가 살았고 서북부에도 살았으며 미시시피 강 주변에서도 살았으나 중부 평야지대 에는 사람들이 별로 살지 않았던 듯 하다고 한다. 뉴욕주에는 Iroquois League 라고 몇 개의 작은 부족국가들이 연맹을 이루고 살기도 하였다 한다. 버지니아에도 정착해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담배를 재배하고 피우며 살았다고 한다.
남북미대륙에는 스페인 사람들이 오기 전에는 말이나 돼지가 없었다. 돼지들이 울에서 도망한 후 멧돼지가 되자 원주민들의 농작물피해가 막심하였는데 처음에는 야생맹수가 된 돼지들을 처리할 방법을 몰라 원주민들이 혼이 났었다고 한다.
남북미 전역에서 사역동물로는 개를 썼다고 하며 잉카제국에서는 작은 낙타처럼 생긴 야마 (Llama) 를 썼는데 Llama 의 털은 거칠어 로프로 만들어 썼고 육용동물로도 쓰였으며 Llama 와 비슷하게 생긴 ‘알파카’라는 동물은 털이 길고 그 fiber 가 좋아서 지금은 최상급의 털 스웨터 등을 만들어서 쓰며 고기는 육용으로 쓰고 있다. 페루 원주민들이 지금도 입고 있는 털옷들은 디자인도 특이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색감도 아주 특징적이고 세련되게 발달되어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