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절제와 극기

2014-03-31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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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상석 / 성공회 신부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다. 꽃 한 송이, 풀 한포기도 겨우내 길고 긴 기간 홀로 자기 절제나 고된 극기의 연단 없이는 피어 날 수 없다. 봄 꽃 속에서 불퇴전의 결기로 자기 비움과 극기를 위하여 자신을 내던진 고독한 수도자의 거룩한 모습을 본다.

봄에 새싹을 돋아내고 꽃을 피워내는 나무와 풀에게만 자연의 섭리에 부응하는 절제와 극기가 필요하겠는가? 절제와 극기는 인간에게도 의당 있어야 할 일이요,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우리 사회에도 반드시 있어야 할 덕목이다.

오늘 우리의 세상을 보면 모든 면에서 개인적, 사회적 절제와 극기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요청된다. 요즘 세상은 우리를 무제한의 삶으로 부른다. 인터넷 관련 광고를 보면 무제한 통화, 무제한 문자, 무제한 용량 등등 ‘무제한’이라는 말이 일상화 되었다.


무제한의 익숙함에 사로잡히다 보면 자칫 제한이나 절약 혹은 절제나 극기의 개념과 가치가 불편하게 여겨지거나 소홀하게 취급될 것 같아 우려 된다.

우리 사회를 보면 이미 개인적으로 자제나 절제를 하지 못하고 일순간의 충동으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고와 사건들이 적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사치와 낭비와 무절제로 인한 손실과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유한한 세상에서 무한 혹은 무제한이라는 말은 사실 꽤나 무책임한 말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무한한 것은 없다. 또한 무제한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모든 면에서 일정 수준의 제한 곧 절제와 극기가 필요하다.

개인으로서도 마음에서 일어나는 욕구와 욕망에 대하여 자기 제한과 절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언어적 절제가 필요하고, 힘 있는 사람이나 기관이나 국가는 힘의 절제가 필요하다.

씀씀이에 대하여 절제가 필요하고, 에너지나 지구 자원을 사용하는 일에도 경제적 빈부의 정도를 떠나 아낌과 절약이 있어야 한다. 젊음과 사회적 권력을 사용함에도 제한과 절제가 필요하다. 사회적 절제가 사라지면 도덕과 윤리는 무너지고, 사회적 사치와 낭비가 극심해지며, 국가의 기관들은 권력 남용과 오용으로 혼란해 질 것이다.

절제와 극기를 실천하려면 그 의미와 목적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대개 절약이나 절제 혹은 극기를 개인적 차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절제와 극기는 개인의 취향이거나 개인의 수덕(修德)과 인격의 완성을 위한 선택적 실천으로 여기게 된다.

그러나 절제와 극기의 미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개인적 차원의 절제와 극기는 아름다운 사회와 조화로운 세상을 위한 사회적 절제의 미덕으로 이어지게 된다. 절제와 극기의 사회적 차원이다. 이를 논어(안연편)에서는 자기의 마음을 이기고 사회적 조화의 이상적 개념인 예(禮)로 돌아가는 극기복례(克己復禮)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절제와 극기를 해야 할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 우리 모두와 세상과 자연을 살리는 우주적 리듬이기 때문이다. 풀 한포기와 꽃 한 송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절제와 극기는 우주의 만물이 담고 있는 우주적 섭리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절제와 극기는 도덕군자를 지향하는 사람만이 하는 개인적 혹은 선택적 실천이 아니다.

절제와 극기는 자기의 내면과 일상의 삶을 완성하는 길이며, 세상을 검소하고 아름답고 조화롭게 하는 사회적 미덕이며, 동시에 우주의 리듬에 순응하는 우주적 섭리와 삶에 동참하는 당위적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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