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4-03-25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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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찌개를 끓이려는데
김치가 없다 양파도 없고 두부도 없다
있는 거라곤 달랑 오이 두 개
오이만으로 참치찌개를 끓일 수 있나

참치찌개를 포기하고
오이 한 개 채 썰어서 밥을 비빈다
다른 야채가 곁들여지지 않은 오이밥
처음

몇 숟가락은 푸른 맛에 끌려
배고픈 맘 달래며 먹어보지만
오래 못 먹는다


오이만으로
비빔밥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
김치 없는 밤, 쓸쓸한 밥

-임희구 (1965-) ‘우울한 연애’ 전문


참치 찌개를 끓여 먹고 싶은 사람이 참치도 없고 김치도 없고 양파 두부도 없다. 그래서 먹고 싶은 참치찌개 대신 먹고 싶지 않은 오이밥을 먹고 있다. 연애와 밥, 많이 다를 것도 없다. 욕망의 조금 다른 길일뿐이다, 식욕이 당기는 참치 찌개가 달콤한 연애라면 먹고 싶지 않은 오이 비빔밥은 우울한 연애다. 어느 쪽이든 연애는 고급 요리가 아니다. 연애는 뜨겁고 매콤한 참치찌개 국물같이 맛있는 것 혹은 쓸쓸한 오이밥 위에 뚝, 떨어지는 눈물 같은 것.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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