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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미처 몰랐던 토막얘기들 (1)

2014-03-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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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적 사건통해 알게된 ‘미국적’인 것 함께 나누고 싶어”

조태환< 더글라스톤 거주>

글을 시작하면서
작년 9월 중순에 필자는 스물다섯 살의 나이로 주머니에 250불을 담고 미국에 “이민”온지 50년이 되었다. 더 정확하게는 유학생으로 오면서 친지들을 만나보려고 시애틀, 로스앤젤레스와 시카고를 거쳐서 동북부에 있는 미국에서 면적으로는 가장 작은 로드아일랜드 주립대학교에 도착하고 보니 주머니에는 120달러가 남아 있었다.

등록금.장학금은 받아 가지고 왔었기 때문에 그 후 2년간은 첫 일주일 식목원에서 땅 파는 일을 했던 것을 제하고는 기숙사 식당 마루 닦기를 하면서 숙식을 해결했었다. 요즈음 유학생들도 공부하랴 학비와 생활비 마련하랴 몹시 힘든 것을 알고 있지만 50여 년 전에는 더욱 어려웠었다.


필자는 부모님 덕택에 철없이 대학교까지 졸업하고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이들처럼 육군에서 졸병으로 만기복무를 하였다. 다행히 제대 얼마 전에 있었던 동아일보 견습기자 시험에 합격이 되어서 제대 즉시 신문사에 출근하기 시작했었다. 견습기자로 7명을 뽑았는데 어중이떠중이들이 다모여 2,500여명이 응시했었으니까 어지간한 경쟁이기도 했었지만 그 때는 대학 졸업 후 취직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 같던 시절이었다.

미국에 와서는 풀타임학생 노릇하랴 생활비 벌랴 마루 닦기, 접시 닦기,busboy, 웨이터 등 점점 ‘승진’해 가면서 안 해본 일이 없고 미국에 온지 3년 후에 필자와 같은 해에 유학생으로 와서 버지니아공대 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아내와 중매로 결혼을 했다. 아내는 career goal도 분명치 않았던 필자의 허황된 꿈을 말하는 소리에 현혹되어 고생길을 같이 출발하였으나 지금은 아들딸의 어머니에다가 네 손자.손녀들의 할머니로 잘 살고 있다. 14년 전에는 필자가 두 눈을 다 실명하는 절망적인 일이 있었고 2년 전에는 아내가 위암으로 수술을 받는 엄청난 일들도 겪었지만 팔십이 내일 모레인 나이에도 초혼 때처럼 매일 다투어가며 잘 살고 있다.

필자는 모태 속에서부터 장로교회를 다녔고 장로로 일하기도 하였지만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지는 못한다. 학교와 전공과 대학원들을 바꾸어 다니던 끝에 원래는 생각도 못했던 공인회계사가 되었고 퀸즈칼리지에서 10여 년간 회계학 교수를 했던 것 빼고는 계속 공인회계사 사무실을 자영해 오다가 20여 년 전에 후배공인회계사들과 함께 대뉴욕지구한 인공인회계사협회를 창립했고 초대회장으로 일한 적도 있었는데 실명한 후로는 백수건달이 되었다. 아내도 뉴욕주 공무원으로 오래 일하다가 만기은퇴를 했다.

아내는 원래 음악을 좋아해서 직장에서 공식행사를 할 때에 미국국가를 독창하는 수준이었으나 필자는 부끄럽게 지금도 주변사람들이 미국 국가를 부를 때에 입만 벙긋거리고 있다. 대학이나 대학원 학생으로 미국에 온 사람들도 미국의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가르치는 미국의 기초상식들을 배우지 못해서 미국시민생활 기초상식에 대한 “무학자들”이기가 쉽다.

필자는 미국에 오기 전에 영어도 꽤 잘했고 미국에 관한 책도 더러 읽어보았고 미국의 대학원도 몇 개나 다녔고 학위도 두어 개나 받았고 무엇보다 미국에서 50여년을 살아온 지금에도 “내가 미국에 대한 기초지식이 이렇게 없었구나!” 라고 얼굴을 붉히며 중얼거리는 수가 자주 있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 사는 대부분의 동포들이 필자보다 미국에서 살아온 연륜이 훨씬 적은 것으로 보아 아마 우리 동포들 대부분은 필자보다 더 ‘무학자’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이민자들로 구성된 나라 미국은 이론적으로는 ‘미국적’이라는 것이 없어야 된다. 미국사람들이 자신들의 혼합성을 설명할 때 흔히 잘 쓰는 용어인 ‘멜팅 팟(melting pot)’은 ‘잡탕’맛만 나야 할 텐데 우리는 ‘미국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보고는 당황해 하는 수가 많이 있다

우리는 미국사람들이 ‘민권, 종교의 자유, 小政府, 州權, 사법의 독립, 묵비권, 인종차별, 시민의 자유 , 언론의 자유, 총기휴대에 관한 자유, 등등 …’ 을 핏대를 올려가며 주장할 때에 그런 단어들의 번역된 의미만 생각해보고 “도대체 미국사람들은 왜들 이렇게 다혈질인가” 라고 궁금해 하는 수가 많다. 아니 도저히 이유를 모르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필자는 미국역사에 대해 대강은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간추린 미국역사를 최근에 읽기 시작하였다. 피상적으로 대강 알고 있었던 미국의 역사적인 사건들과 사상의 흐름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읽어보기 시작하면서 “미국적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고 저런 이유에서 시작된 것이로구나” 라는 것이 서서히 분명하게 나타나 보이는 것이었다.

처음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던 것들이 역사를 읽어가면서 점점 뚜렷한 형상으로 굳어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하, 이런 것들이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짧은 나라가 거의 모든 늙은 나라들의 스승이 되도록 만든 이유로구나” 라는 감탄과 함께 미국이 물자만 풍부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귀한 발견들이라는 다소 건방진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막상 이런 글을 쓰는 것이 필자처럼 역사에 대한 기본바탕도 없는 사람으로서 가능할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욕심으로는 미국역사를 한약처럼 푸욱 달인 후 꼬옥 짜서 보약은 보약대로 우선 마시고 포대기에 남아있는 약재들을 지금 이 글 정도의 길이의 글로 무슨 약재가 얼마씩이나 들어있고 약재료의 구성인자는 무엇이며 다른 약재들과 어떤 상호관계를 가지는 것인지 한 가지씩 분석해보고 싶다.

만약 필자가 추구하는 대로 분석만 된다면 그것은 한국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고 또한 미국에 살던, 한국에서 살던 간에 한국 사람들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알게 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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