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4-03-0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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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황동규(1938-) ‘즐거운 편지’ 전문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영원한 기다림조차 사소하게 여겨지는 이가 여기 있다. 밤이 들며 눈이 퍼붓기 시작하는 골짜기, 그곳은 사랑을 영원히 가두는 아늑한 곳이며 사랑의 순간을 영원히 꽃피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세상 모든 것처럼 언젠가 사랑도 필시 끝이 나지만 영원을 품은 순간의 골짜기는 이미 끝이 없는 곳이다. 그러기에 사랑의 골짜기에 빠진 이는 끝없는 기다림조차 즐거운 것이리라.

-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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