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족’의 시대는 지났다

2014-03-01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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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탁 변호사

민족이라는 개념은 현재와 같이 여러 종족이 어우러져서 함께 생활하는 시대로 변모하면서 본래의 의미와는 다른 의미로 변해가고 있다.

최근의 보고에 의하면 한국 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110만명에 달하며 신혼부부 10쌍 중 한쌍이 국제결혼 부부이다. 올림픽에서 한국인 안현수가 러시아 대표로 금메달을 따는가 하면, 중국인 공상정이 귀화하여 한국에 금메달을 가져오는 세상이다. 민족을 근거로 편 가르기를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민족이라는 단어는 우리 민족이 아닌 다른 집단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그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내세워왔다. 항일투쟁 당시 ‘민족’이란 단어가 많이 분출 된 것은 항거의 상대인 일본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에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없다. ‘People’이 가장 가까운 표현이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는 해당국 국민에게 있다”라고 한 선언을 ‘민족자결주의’라고 번역 했는데 이것은 잘못된 번역이다. 영어로 ‘Self-Determination of Peoples’를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국민자결주의’가 원문에 가까울 것이다.

국민이란 표현은 혈통에 관계없이 그 나라의 모든 주권자를 포함하는 평등하고 포괄적 의미를 지닌다. 민족이라는 어휘에는 혈통을 중요시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것은 인종차별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현 세대에서는 맞지 않는 표현이다.

민족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사회는 아마도 북한일 것이다. 주체사상의 근본의 하나가 조선혈통이며 다른 요소가 김일성/ 김정일/김정은 통치 하에 있는 국민이다. 즉 김씨 일가의 통치 하에 있는 조선민족이 세계에 으뜸가는 민족이며 스스로 지상 낙원을 이룬다는 사상이다. 북한에서 외국인과의 결혼을 금하는 이유 역시 민족적 혈통을 보존하기 위함일 것이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국수주의(Nationalism)와 혈통주의(Jus sanguinis)를 혼합한 과대 망상적 착상이다. 혈통주의는 인종차별과 유사한 종류의 사상이며 국수주의는 인종차별 보다 더 국제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사상이다.

유엔 헌장의 목적 역시 위와 같은 국가 간의 차별적 행위를 지양하고 국가의 대소를 막론하고 모든 회원국의 공동 번영을 추구함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국수주의, 민족주의, 혈통주의를 고수함은 유엔 헌장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행위인 것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단일 민족이니 백의민족이니 하는 표현도 이미 설득력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귀에 거슬리는 표현이 되고 말았다.

대한민국 헌법에 “민족의 번영을 위하여”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시정되어야 한다. 한국 혈통이 아닌 국민이 100만을 넘는데, 헌법의 보호 대상을 한국 혈통으로 제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헌법을 색맹(Colorblind) 이라고 했듯이 한국 헌법도 색맹적 시각으로 개정 되어야 할 때가 왔다. 주위의 환경은 급변하는데 인간의 생각이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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