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4-02-18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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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뜰 수 없다 하고
여관 따뜻한 아랫목에 엎드려
꿈결인 듯 통통배 소리를 듣는다
그 곁으로 끼룩거리며 물려 다닐 갈매기들을 떠올린다
희고 둥근 배와 붉은 두 발들
그 희고 둥글고 붉은 것들을 뒤에 남기고
햇빛 잘게 부서지는 난바다 쪽
내 졸음의 통통배는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멀어져가리라

옛 애인은 그런데 이 겨울을 잘 건너고 있을까
묵은 서랍이나 뒤적거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헐렁한 도꾸리는 입고
희고 둥근 배로 엎드려 테레비를 보다가
붉은 입술 속을 드러내고 흰 목을 젖히며 깔깔 웃고 있을지도,
갈매기의 활강처럼 달고 매끄러운 생각들
아내가 알면 혼쭐이 나겠지
참으려 애쓰다가 끝내 수저를 내려놓고
방문을 탁 닫고 들어갈 게 뻔하지만
옛날 애인은 잘 있는가
늙어가며 문득 생각키는 것이, 아내여 꼭 나쁘달 일인가
밖에는 바람 많아 배가 못 뜬다는데

-후략-


-김사인(1956- )‘목포(木浦)’ 일부


바람 때문에 배는 뜨지 못하고 따스한 여관방 아랫목에 엎드려 화자는 바다 풍경을 그린다. 상상의 통통배는 난바다로 멀어져가고 문뜩 떠오른 희고 둥근 배와 붉은 발을 가진 갈매기들은 옛 애인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옛 애인은 잘 있을까. 상상 속의 그녀는 헐렁한 스웨터를 입고 텔레비전을 보며 깔깔 웃는다. 졸음의 통통배를 타고 옛 애인과 겹쳐지는 아내의 뾰로통한 모습, 갈매기의 활강처럼 달고 매끄럽고 재미있는 정경이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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