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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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하봉호의 북한 방문기 (6) 북한의 결혼풍속

2014-02-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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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과 군대마친 공산당원’ 최고 신랑감

▶ 남자 18세.여자 17세부터 헌법상 결혼 가능

김일성이 남자31세.여자28세 권장
결혼식은 신랑이 처가에 가서 신부 데리고 신랑집에서 전통혼례로
선망의 대상인 소위 5장6기 신혼살림은 모두 신부측에서 장만

■북한의 1등 신랑감, 세 가지 조건
경성 온천욕으로 피곤을 말끔히 날려버린 일행은 칠보산에서 경성까지 비포장도로를 한 시간 반 정도 달렸다. 오로지 내가 사용한 욕조만 문제가 있었는지 다른 욕조는 물도 풍부했고 수질도 좋아 피부가 부드러워졌다며 모두 만족스러워했다.

천고마비의 계절, 함경북도의 하늘은 높고 맑았다. 아침과 저녁은 쌀쌀해도 한낮의 버스 안은 더웠다. 먼지 속에서 창문을 열고 달리다가 반대편에서 차량이 지나가면 재빨리 창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리고 얼마쯤 지나 먼지가 없어지면 얼른 창문을 다시 열었다. 우리 일행은 각자의 창문을 열고 닫고 하면서도 재미있어 했다. 손가락질 사건이후 더욱 친숙하여진 안내원이 자기는 청진의 제 1중학교를 나왔으며, 그 학교는 영재교육을 위해 설립되었다고 자랑했다.


안내원에 의하면 북한 여성에게 인기 있는 1등 신랑감의 세 가지 필수조건은 대학과 군대를 마친 공산당원이란다. 자신도 대학 군대를 필한 공산당원으로 일등 신랑감이였음을 은근히 과시하며 군복무가 의무사항이 아니고 자원입대로 바뀌었지만 사회 분위기가 군대를 다녀오지 않고는 출세를 할 수 없어서 대부분 10년 이상의 군복무를 지원한다고 했다.

북한은 헌법으로 남자 18세, 여자 17세부터 결혼할 수 있다. 그러나 김일성이 혈기 왕성한 20대에는 조국의 건설을 위하여 정진하는 것이 좋다며 남자 나이30이 넘어서 결혼하는 것을 권장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북측에서 평균 결혼 나이는 남자 31세, 여자 28세 정도이며 중매보다 연애결혼이 많다고 한다.

■결혼식은 신랑집에서
북한에서도 꽃이 만발하는 봄과 날씨가 좋은 가을에 결혼식을 많이 올린다. 결혼식은 보통 신랑이 처가에 가서 신부를 데리고 신랑집에 와서 전통혼례로 치러진다. 함경북도에는 한국과 같은 전문 결혼식장은 따로 없으며, 신랑집에 친지들이 모여 식사와 노래를 같이하며 결혼 잔치를 한다고 안내원이 말했다. 이때 여자의 웨딩드레스는 한복으로 가슴에 꽃을 달고 남자는 양복 넥타이 차림에 꽃을 가슴에 단다. 물론 김일성 또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사진이 들어가 있는 뱃지도 왼쪽 가슴에 꽃과 같이 부착한다. 꽃은 생화가 아닌 실크나 플라스틱으로 된 조화이다.

미국에서 교회 결혼 예식을 마친 신혼부부가 십자가 앞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하는 것처럼 북한의 신혼 신부는 자발적으로 김일성 동상이나 김일성 사적지에 찾아가 사진 촬영을 한 후 공원 등에서 야외 촬영을 한다. 사진 촬영에는 전문 사진 기사와 신랑 신부의 친구들이 동행하며 신혼여행은 거의 없고 바로 신랑집에서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북한의 가정은 남자 중심의 가부장제이고, 시어머니는 새로 들어온 며느리를 꿈쩍 못하게 한다며 새댁은 약 3년간 벙어리 시늉으로 시집살이를 버티어야 한다고 하니 뉴저지에서 온 미세스 리가 고부간의 갈등은 남북이 따로 없다고 하여 모두 웃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북한 또한 자녀양육의 부담 때문에 저출산이 예상되고 있어 아이를 많이 낳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3명의 자녀를 둔 가정에는 특별 포상을 하고 주택도 무상으로 제공한다고 한다. 또한 여성들을 육아 부담에서 해방시키고 여성권리의 향상을 위하여 남녀평등과 어린이 보육에 관한 법령을 제정하였으며 탁아소, 보육원, 공동세탁소, 밥공장, 반찬공장, 된장공장, 간장공장, 무상치료소, 산원 등을 설립하였다며 자랑하였다. 산모는 아이의 출산을 전후하여 150일간의 유급 휴가를 주고 휴가가 끝나면 직장 부근의 탁아소에 자녀를 맡기도록 하고 있다.
▲ 결혼식 후 어린이 공원에 사진 촬영 나온 신혼부부, 활짝 웃고 있는 신랑 옆에 하얀 한복의 신부가 얌전히 웃고 있다. 신부를 도와주는 들러리와 사진사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신혼살림의 꿈, 5장 6기 혼수품
북한에서 남자는 혼인을 위해 크게 돈을 쓸 일이 없다고 한다. 신부에게는 옷과 화장품, 처가 식구에게는 양복천을 선물하고 결혼식 당일 잔치를 위한 식사, 술등의 경비가 지출될 뿐이다. 집은 국가에서 배정하고 부엌살림이나 집안의 가구, 이불 등의 살림살이는 신부 측에서 만하여야 한다.

특히 함경북도에서는 살림살이의 전부를 신부 측에서 장만하는데 선망의 대상인 혼수는 5장6기이다. 우리 몸에 5장6부가 있듯이 북한의 신혼살림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혼수용품인 5장이란 이불장, 양복장, 책장(책상), 찬장, 신발장이며, 6기는 TV수상기, 세탁기, 선풍기, 재봉기, 사진기, 냉장기(냉장고)를 말한다. 이것을 다 준비한다는 것은 신부의 꿈이며, 약 10% 정도만이 이를 갖추어 결혼을 한다고 했다.


■맛있는 커피샵
경성에서 버스로 북상해 청진시를 가로 질러 라선시 입구에 도착하자 만물박사인 청진 안내원이 작별인사를 하고 떠났다. 우리 일행은 다시 라선 특별시에 들어가기 위하여 여권을 제출하고 1시간 넘게 통관절차를 기다렸다. 통관소에는 웃음을 잃어버린 표정의 제복 입은 사람들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통관절차를 마치고 라선에 들어서면서 버스 마이크는 라선시 안내원 차지가 되었다.

라선시는 중국 러시아 북한이 만나는 중요한 지역으로 10여 년 전 경제특구가 된 이후 중국과 러시아에서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여기저기 곳곳마다 건축공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 남한의 복부인들이 알면 투자하러 몰려올 것 같았다.

북한에서 먹은 모든 음식은 만족스러웠으나 식당의 커피 맛은 불만스러웠다고 하자 원두커피를 갈아서 파는 커피샵이 있다며 우리를 라선시 남산호텔로 안내했다. 안내원은 이 호텔이 일본 관동군 사령부였으며 이곳에서 일본 장교로 근무했던 사람이 남한에서 장군도 되고 대통령도 되었다고 설명했다. 한때 관동군 사령부였던 남산 호텔은 미국 수준으로 별 한 두개 정도의 시설이었다.

영어로 써 있는 안내문은 틀린 것만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집 떠나고 오랜만에 마시는 커피는 신선하고 참으로 맛있었다. 커피샵 입구에는 발렌타인, 시바스리갈, 죠니워커, XO꼬냑 등 온갖 고급 양주가 진열되어 있었으며 중국산 맥주와 중국산 청량음료, 차를 비롯한 음료를 주문하면 해바라기씨, 땅콩 등의 간단한 안주가 제공되었다.

■라선시 해안공원
맛있는 원두커피를 마신 일행 한명이 카메라 용량이 모자라 호텔 옆 전자상품을 파는 상점에 들렀다. 이곳에는 Dell, HP, Acer등 미국에서 흔히 보는 상표의 컴퓨터와 가라오케 등이 있었는데 거의 모든 전자제품은 중국 상품이었으며, 반갑게도 한글로 된 “산울림”이라는 상표의 이동식 화면 반주기(가라오케)가 보여 자세히 보니 뒷면에 조그마한 글씨로 Made in China라는 표시가 있었다. 이곳에 언젠가는 삼성, LG의 전자제품과 태진의 노래방 기계가 진열되길 기대하며 메모리칩을 구입한 일행은 동해 바다가 보이는 해안공원으로 향하였다.

화창한 날씨의 일요일이라 그런지 공원은 아이들로 가득하였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웃고 떠들며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놀이기구들에 아이들이 넘쳤다. 공원의 한쪽엔 대형스크린에서 만화 영화도 상영되고 있었다.

놀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 미끄럼틀과 공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십여 쌍의 신혼부부들이 있었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신부와 양복 정장의 신랑 가슴에는 꽃과 김일성 뱃지가 각각 달려 있었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웃는 신랑 옆에 수줍어하는 신부와 들러리로 따라온 신부 친구가 신부의 옷단장을 도와주고 있었으며 사진사는 열심히 신랑 신부를 촬영하고 있었다. 어린이들과 신혼부부들로 가득한 라선 해안공원의 일요일은 즐거운 웃음으로 가득했다.
▲라선시 남산 호텔 커피샵에서 집 떠나고 처음으로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카운터 뒤와 진열장 속에는 값비싼 각종 양주들이 즐비하게 있었으며 중국산 음료와 대동강 맥주가 판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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