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저변의 힘

2014-02-13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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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사람들은 실용성을 대단히 중시한다. 네덜란드에서 오랫동안 유학생활을 한 한인 교수로부터 들은 얘기. 네덜란드 사람들은 콧구멍이 상당히 넓은데 이들은 공짜인 공기를 조금이라도 더 들이마시려 하다 보니 콧구멍이 커졌다고 농담을 한다는 것이다.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계속되는 네덜란드의 싹쓸이를 지켜보면서 이 농담을 떠올렸다. 이들이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독보적인 이유는 아마도 넓은 콧구멍으로 남들보다 더 많은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건 재미로 해 본 상상이고 네덜란드가 빙상 최강국이 된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4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다. 그런 까닭에 인공 제방과 수로가 발달했는데 이것이 겨울만 되면 꽁꽁 얼어붙는다. 이런 환경에서 스케이팅은 생활화될 수밖에 없다. 거의 전 가정이 스케이트를 갖고 있는 나라가 네덜란드다.


수백년 된 네덜란드 그림들 속에서도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지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요즘도 겨울철이면 스케이트를 타고 출근하거나 등교하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국민들의 체격도 장난이 아니다. 타고난 체격에 환경까지 갖추고 있으니 잘하는 게 당연하다.

전체 인구는 많지 않아도 스케이팅의 저변은 다른 국가들과 비교되지 않는다. 그래서 스케이팅은 축구 다음으로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스타들은 국민적 영웅이 되며 이들에게는 엄청난 명예와 부가 따른다.

진정 스포츠 강국이 되려면 무엇보다 저변이 넓어야 한다. 간혹 나타나는 뛰어난 선수 몇 명에 의존하는 엘리트 스포츠로서는 지속적인 강국이 되기 힘들다. 동계스포츠 강국들을 보면 하나같이 스포츠가 생활화 돼 있는 나라들이다. 노르딕 스키를 중심으로 동계스포츠의 최강자로 군림하는 노르웨이가 그렇고 스키 활강부문에서 강세를 보이는 오스트리아도 마찬가지다. 이 두 나라는 인구가 채 1,000만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스포츠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이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1만m 레이스를 벌이던 한국의 이승훈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내던 네덜란드 응원단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 선수임에도 올림픽 신기록을 깰 것처럼 보이자 네덜란드 응원단은 뜨거운 함성으로 이승훈을 응원했다. 이처럼 진정한 스포츠 사랑은 국경까지 뛰어 넘는다.

저변은 단순히 경기인구 수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를 뒷받침하는 인프라는 물론 스포츠를 대하는 태도까지 포함하는 문화적인 개념이다. 4년 전 밴쿠버에서 한국선수들이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예상치 못한 호성적을 거두자 언론들은 빙상강국으로 우뚝 섰다며 흥분했다.

그러나 이런 자부심은 이번 올림픽에서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상화의 첫 금메달로 한숨은 돌렸지만 아직은 한국이 빙상강국 반열에 올랐다고 보기 힘들다. 네덜란드 같은 나라와 계속 경쟁할 수 있으려면 무수한 꿈나무들이 한창 자라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저변은 여전히 취약하다. 4년 후 평창이 벌써부터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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