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주의 중국왕조에서 죄인에게 행해지던 징벌이나 조례는 매우 복잡하다. 그러나 대략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매(打)와 처형(殺), 유배다.”
“매를 때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렇지만 더 다양한 건 처형방식이다. 어찌나 잔인한지 인성을 포기한, 게다가 엄청난 상상력을 지닌 사람만이 고안해 낼 수 있는 것들이다. 중국의 궁전이나 관아에서 실시하던 처형방법은 인류사상 가장 잔혹한 살인유희다.”
중국의 문화사학자 위치우위의 지적이다. 몸의 모든 기관과 근육, 심지어 피부까지 고통의 장이 된다. 죽음을 세세히 느끼고 되새기게 할 정도로 처형방식은 잔혹하기 짝이 없었다.
유배는 그러면 처형에 비해 상당히 관대한 징벌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다. 처형은 아무리 혹독해도 오래 끌 수는 없다. 이에 비해 유배는 아주 오랫동안 지독스러운 고통을 안겨준다.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 있는 게 유배다.
명(明)나라 때 기록을 보면 선덕(宣德) 8년에 일시에 170명이 만주지역으로 유배됐다. 가던 도중에 3분의 2이상이 죽어 유배지에 도착한 사람은 50명 정도에 불과했다. 유배지로 가는 길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진짜 고통은 그 때부터 시작된다. 어제까지 번듯이 살던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노예가 돼 배분된다. 얼굴이 반반한 여자는 겁탈의 대상이다. 그 남편은 살해되는 게 다반사였다. 더 처절한 건 그들 대부분이 무슨 사건으로 그 같은 처벌을 받는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이다.
통치자의 눈에는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거대한 나무에서 자라는 잎과 같은 존재였다. 그 잎 하나가 눈에 거슬린다. 이는 그러면 뿌리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그러니 뿌리까지 몽땅 뽑아버리는 것이었다.
3족을 멸한다(때로는 9족)는 연좌제를 적용해 처벌하다보니까 대부분 사람들은 왜 처벌을 받는지조차 몰랐던 것이다.
기관총으로 쏴 죽인다. 화염방사기로 태워버린다. 남은 시신 조각은 동물 먹이로 주어진다. 장성택 처형과 관련해 들려온 이야기다. 장성택의 일가 친족은 모두 처형됐다. 누나 가족에서 장성한 조카들, 또 그 어린 자식에 이르기까지. 계속해 들려오는 소리다.
그로 끝난 게 아닌 모양이다. 장성택을 대표하는 친중파 3000여명이 숙청돼 산간으로 추방됐다는 것이다. 그 들려오는 소리 소리가 너무나 끔찍하다.
‘종파분자는 3대를 멸해야 한다’-. 일찍이 김일성이 한 말이다. 이에 따라 영문도 모른 채 처형된 사람은 그 숫자가 얼마인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할아버지부터 어린 손자까지 3대가 수용소로 끌려가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만 현재 최소한 20만이 넘는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인간사냥, 그 가장 잔혹한 살인유희. 그 비극을 끝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강력한 인권정책을 통한 ‘레짐 체인지’가 그 유일한 방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