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2014-01-21 (화) 12:00:00
나, 세한도 속으로 들어갔지 뭡니까
들어가서는 하늘 한복판에다 손 훠이훠이 저어
거기 점 찍혀 있는 갈필(渴筆)의 기러기를 날아가게 하고
그리고는 그리고는 눈 와서 지붕 낮은 거 더 낮아진
저 먹 같은 집 바라 보다가 바라보다가
아, 그만 품에 품고 간 청주 한 병을 내가 다 마셔버렸지 뭡니까
빈 술병은 바람 부는 한 귀퉁이에 똑바로 세워놓고
그러고는 그러고는 소나무 네 그루에 각각 추운 절 하고는
도로 나왔습니다만 이거야 참 또 결례했습니다.
- 신현정(1948-) ‘적소(謫所)’ 전문
제주도 유배 당시 책을 보내준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추사 김정희의 그림 ‘세한도’는 보는 이로 하여 고요하고 청정한 외로움의 여백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쓸쓸하고 황량한 고독, 상실과 소외 속에 펼쳐진 백색의 무한 광야, 그 풍요를 느낄 수 있는 이라면 한 병의 술을 다 비우는 결례를 피할 수 없으리라.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 추운 겨울이 되어야 소나무 잣나무의 시들지 않음을 알리라 했으니 이 세상 지조와 진정함에 목마른 사람들, 무작정 빠져 한참을 놀다가기 참으로 적소(適所)이겠다.
- 임혜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