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이후 유대계 보석상들 뉴욕 건너와 규모 확장
한때 미국 다이아몬드 거래 90%까지 점유
2,500여 개인 사업자가 하루 평균 4억 달러 거래
42번가 타임스 스퀘어 일대의 번화함을 벗어나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낮에는 그 어느 곳보다도 시끌벅적한 오피스타운 6애비뉴를 지나, 47번가 일대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선다. 입구부터 보석이나 액세서리를 다루는 금은방이 다수 자리하며, 안내 팻말에는 ‘다이아몬드 & 보석 거리Diamond & Jewelry Way’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바로 이곳이 미국에서 가장 많은 보석을 거래한다는, 속칭 ‘다이아몬드 거리’다.
▲뉴욕에서의 화려한 성공을 꿈꾸는 곳
쇼윈도로 보이는 비싼 보석들의 향연. 그 모습을 지나가는 행인, 방문객 할 것 없이 하염없이 바라본다. 시오도어 드라이저의 소설 ‘시스터 캐리(Sister Carrie)’에서 주인공 캐리는 시골에서 뉴욕으로 나와 한 보석 가게 앞에서 이렇게 읊조린다. ‘이 도시는 쾌락과 유희가 소용돌이치는 하나의 운동체다’ 마치 케리처럼 화려한 도시 이미지를 그리듯 유달리 빛나는 보석에 잠시나마 성공이란 꿈을 꾼다.
과연 이 다이아몬드에 붙은 가격표에는 0이 도대체 몇 개가 붙어있는 것일까. 그 숫자를 세다 곧 포기하고 만다. 다만 몇 캐럿, 몇 K, 몇 달러 등등 그 규모나 숫자, 양 모두 그저 압도적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다. 허름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그 속의 내용물만큼은 180도 달랐던 것이다.
▲하루 평균 4억 달러의 거래액을 자랑하는 보석의 거점
사실 이 일대가 다이아몬드 거리로 조성되기 전, 보석 거래의 중심가는 ‘캐널 스트릿을 축으로 한’ 차이나타운 일대였다. 그것이 캐널 스트릿의 발전과 함께, 보석 가게들이 이쪽으로 대거 이전해온 것이다. 물론 그 바탕에는 미드타운이 도시 발전의 축이 되어 주요 상점가가 이동해온 흐름이 있었다. 게다가 2차대전을 거치며 유럽 다이아몬드 거래의 메카로 꼽히던 벨기에 앤트워프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유대계 보석상들이 나치의 탄압을 피해 대거 뉴욕으로 건너오며 그 규모는 더욱 커졌다.
한 시기 미국 다이아몬드 거래의 90%까지 점유하던 일대는, 3,500여개에 이르는 가게가 밀집할 만큼 존재감을 드러냈다. 비록 현재는 이전만큼의 활력을 되찾지는 못한다. 비싼 렌트와 경제 악화로 고가 폐물 거래가 침체 기조에 처했기 때문이다. 다만 여전히 그 거래의 주도권만은 놓지 않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루 평균 거래액이 4억 달러에, 2,500여 개인 사업자가 그 거점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수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