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경제칼럼/ 어느 쪽 회계사?

2013-11-29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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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한 <공인회계사>


나는 돈을 주는 사람을 위해서 일을 한다. 상식과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나는 손님의 편에서 일을 하는 회계사다. 손님은 언제나 나에게 왕(王)이다.
그런 내 손님이 집을 팔았다. 가격은 80만달러. 예상했던 대로 사는 쪽에서 10%에 해당하는 8만달러는 줄 수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1980년에 생긴 특별법 FIRTA 때문이다.

세법상 비거주자로부터 집을 살 때는 매매 대금의 10%를 IRS에 내고 나머지 90%만 파는 쪽에 주도록 되어 있다(세법 Sec. §1445). 외국인은 집을 팔고 자기 나라로 가버리면 세금 받기가 쉽지 않으니까 IRS가 이런 법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손님은 한국 거주자였다.


집을 판 사람은 내년 개인세금보고를 할 때 그 10%를 크레딧으로 해서 정산을 한다. 그때 가서 이 경우 8만달러 이상의 세금이 나오면 더 내고 아니면 환급을 받게 된다. 그런데 내 손님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고 파는 것도 억울한데 10%를 받으려면 내년 세금보고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니 이해가 되겠는가?
결국 나는 10%를 떼일 필요가 없다는 원천징수 면제 확인서를 IRS로부터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손해를 봐서 낼 세금이 없는 것이 맞는다면 어차피 내년에 IRS가 전부 돌려줘야 할 돈을 미리 낼 필요가 없다는 논리였다(Rev. Proc. 2000-35). 양식 8288-B와 처음에 얼마에 샀다는 계약서, 이후의 집을 고치는데 들어간 공사 내역, 그리고 사는 쪽이 얼마에 사겠다고 쓴 편지 등 여러 가지 서류들이 필요했다. 물론 모든 일은 내 손님이 원하는 대로 해결이 잘 되었다.

그런데 만약, 반대로 내가 집을 사는 쪽의 회계사였다면 어땠을까? 클로징 후 20일 이내에 10%를 IRS로 보내지 않으면 집을 팔고 한국으로 가버린 사람의 양도소득세를 사는 쪽인 내 손님이 대신 물어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내 손님에게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무슨 일이 있어도 꼭 10%를 떼라고 했을 것이다.
어떻게 한 입 갖고 두 말을 할 수 있을까? 말과 논리가 달라질 수 있는 일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가게를 사고파는 거래, 회사와 직원의 관계, IRS와 손님의 다툼 등등. 누가 내 손님이고, 나는 누구의 회계사인가가 초점이 아닐까?

아시아나 항공 생긴 것이 88 올림픽 때쯤. 내 회계법인의 새 손님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대한항공 손님을 갖고 있을 때였다. 경쟁관계의 두 회사가 어떻게 같은 회계법인에 일을 맡길 수 있었을까? 아시아나 항공을 맡은 회계사는 아시아나 항공을 위해서, 나는 대한항공을 위해서만 일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는 대한항공 비행기만 탔다.

지금도 나는 내 손님의 미용실에 가서만 머리를 깎고 가급적이면 내 손님의 식당에 가서만 밥을 먹는다. 사람들에게 그 미용실이 친절하다고, 그 식당 밥이 맛있다고 광고를 하고 다닌다. 법이나 양심을 속이는 일이 아니라면, 손님은 언제나 나에게 왕(王)이다. 그래서 떳떳하게 그들의 편에 서는 것이 나는 즐겁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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