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타이밍

2013-11-23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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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운택 자유기고가

내가 사는 토론토의 포드 시장이 마침내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 그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크랙 코케인을 흡입하고 인종차별적 욕설을 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이 보도된 지 거의 일년 반만에 자신의 음주습관에 문제가 있으며 코케인을 흡입한 적이 있음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늦어도 너무 늦었다. 타이밍을 다 놓쳐 버린 것이다. 그를 두둔해주던 사람들은 이미 거의 다 떠났고, 그의 형만 외로이 아우를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형국이다.

첫 보도가 나왔을 당시 혹은 늦어도 한두달 내에 사과를 했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포드 시장의 인기는 대단해서 “나도 평범한 인간이다 보니 과음할 때도 있고, 정치인으로서 지역주민들과 두루두루 어울리려고 하다 보니 부적절한 사람들과 부적절하게 어울린 적도 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겠다”는 요지로 사과를 했다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그를 계속 지지했을 것이며, 언론도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모든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며 언론을 욕했으니, 아마도 그에게 비판적인 언론들은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이틀이 멀다 하고 같은 사진을 실으면서 계속 이슈화 할 수 있게 도와준 꼴이니 말이다.

모든 일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래서 야구에도 ‘적시타’란 말이 있지 않은가. 똑같은 안타라도 경기흐름상 언제 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사뭇 달라지는 법이다. 동양에서 예로부터 중시했던 사주라는 것도 알고 보면 타이밍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생년월일시에 따라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믿었으니 얼마나 타이밍을 중요시한 것인가.

한국의 역대 대통령 중 타이밍을 가장 못 맞춘 분은 노태우 대통령이라고 기억한다. 그는 재임기간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온갖 언론매체와 여론이 난리를 쳐도 아무 반응이 없다가 사람들이 지쳐서 포기하고 잊어버리고 난 후에야 대국민 담화 같은 것을 발표해서 국민들을 오히려 짜증나게 하곤 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은 타이밍 감각이 탁월했던 것 같다. 초급장교 시절 5.16 쿠데타가 일어나자 즉각 육사생도들을 이끌고 지지 입장을 표명하여 일찌감치 박정희대통령의 주목을 받았으며, 10.26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즉시 합동수사본부장 자리를 차지하면서 이어간 일련의 과정을 보면, 그 타이밍의 절묘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 후 임기 말 민주화 열기가 전국을 휩쓸어 폭발직전에 이르렀을 때도 때를 놓치지 않고 전격적으로 6.29선언을 연출해냄으로써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일거에 바꿔버린 타이밍 감각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해도 좋을 것이다.

몇 년전 한국에 사는 가까운 친지의 자녀 결혼식이 있었다. 사정상 결혼식에 갈 형편이 못 되어서 인편에 부조금만 부칠까 하다가 마침 곧 한국에 나갈 계획이 있어 그 때 가서 인사도하고 부조금도 전달하기로 했다. 그런데 한국 방문 계획이 변경이 되고 시간은 자꾸 흘러 새삼스레 부조금을 보내기도 어색하게 되었다. 결국 몇년이 지난 후에야 한국에 나가 부조도 하고 인사도 했으나 매우 어색하고 송구스러웠다. 한번 놓쳐버린 타이밍은 되돌릴 수가 없는 법이다.

가을이 깊어간다. 더 늦기 전에 미루지 말고 부모님께 문안전화도 드리고 친구에게 안부전화도 하자. 중요한 건 타이밍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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