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민권을 버리는 사람들

2013-11-21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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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의 국적포기가 기록적인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올 3분기에 미국국적을 포기했거나 영주권을 반납한 사람은 560명으로 올 들어서만 총 2,369명에 달하고 있다. 관련 통계의 집계가 시작된 이후 가장 많은 숫자였던 지난 2011년의 1,781명을 이미 크게 넘어섰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올 연말쯤 3,000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 통계는 시민권자의 국적포기와 장기 거주자의 영주권포기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또 포기사유 기재도 의무화되지 않아 어떤 까닭에 시민권과 영주권을 버린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단 부유층에 대한 증세 등 경제적인 이유를 첫 번째 이유로 꼽는다. 지난 1년 사이에 바뀐 이민법 규정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신분문제의 변화가 아니라면 세법의 개정과 징세 강화 등 세금 규정이 달라지면서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연말 양당 합의에 따라 부유층의 소득세가 올라가고 자본소득세 부담이 커진 이후 포기자가 급증했다는 점에서 이런 관측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게다가 내년부터 외국 금융기관들이 미국 납세자들의 계좌관련 정보를 미 국세청에 보고하도록 하는 법안이 시행되면서 해외금융계좌 소지자들이 이에 부담을 느껴 시민권과 영주권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세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미국은 해외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에게까지 자국의 세금을 부과한다. 거주국에만 세금을 내면 되도록 하고 있는 다른 선진국들과는 다르다. 9만3,000달러까지 면제조항이 있지만 해외에 거주하는 미국 부자들로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이런 규정 때문에 시민권을 포기하는 해외거주 미국 부자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시민권과 영주권 포기를 순전히 경제적 이득을 계산한 데 따른 것으로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반론도 있다. 이 문제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국적포기 사례들 대부분은 세금과 별로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배우자 국적을 따라 미국 국적을 포기하거나, 미국에서 태어날 때 미국 시민권을 받아 이중 국적자가 된 사람들이 성인이 되면서 시민권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전 세계 억만장자들의 거주지를 추적해 오고 있는 한 전문가에 따르면 지난 10여년 사이 거주지를 옮긴 억만장자는 조사 대상자의 13%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 13% 가운데 거주지를 옮긴 이유로 세금을 든 경우는 30% 정도에 그쳤다. 인간이 거주지를 선택하는 데는 경제적 이유도 작용하지만 익숙함과 인간적인 관계망, 기후, 음식 등이 비경제적 요소들이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유층 세금부담이 커지고 해외계좌에 대한 당국의 감독이 강화되기 시작한 금년 들어 국적포기자가 1,000명 이상 더 늘어난 것을 우연으로만 치부하기는 힘들다. 수많은 세계인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미국 시민권을 포기할 때는 그럴만한 각자의 이유가 있을 터. 그 이유가 무엇이든 미국이라는 나라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거주자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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