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되돌아보는 저녁

2013-11-07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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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서 내려 걷는 시골길
그동안 너무 빨리 오느라
극락을 지나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디서 읽었던가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가다가
잠시 쉰다고
영혼이 뒤따라오지 못할까봐
발들을 스치는 메뚜기와 개구리들
흔들리는 풀잎과 여린 꽃들
햇볕에 그을린 시골동창생의 사투리
푸짐한 당숙모의 시골밥상
어머니가 나물 뜯던 언덕에
누이가 좋아하던 나리꽃 군락

공광규( 1960-) ‘되돌아보는 저녁‘ 전문

차에서 내려 들꽃 만발한 시골길을 걸으며 화자는 생각한다, 사는 데 급급해서 정말 소중한 순간들을 스쳐지나가 버린 것이 아닌가 하고. 만약 극락을 지나쳐버렸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꽃과 풀과 어머니와 누이의 추억 속을 걸으며 잠시 삶의 속도를 멈추는 화자.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봐 말을 타고 가다가 잠시 쉰다는 인디언들의 이야기가 쫓기듯이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의 허상을 찌른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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