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LA 코리아타운에서도 매일 새로운 이름의 가게가 개업하고 문을 닫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특히 경기가 나쁠 때는 개업과 폐업의 변화가 많은 것 같다.
누구나 새로 개업할 때 가게 이름에 많은 신경을 쓰게 마련이다. 상호는 기업의 얼굴이요, 첫 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이름에는 독창적이면서,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는 진정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한인사회 가게들의 상호에서는 그런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물론 가게 주인은 자기 자식의 이름 짓듯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서 지은 이름이겠지만…내가 운영하고 있는 ‘이태리 안경원’이라는 상호는 1970년대 초 서울로 진출하여 명동 한 복판에 안경점을 열면서, 지은 이름이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지은 이름이었다. 당시 흔히 쓰이던 한문투의 이름에서 벗어나 참신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주면서도 깊은 뜻을 담고 싶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스피노자의 안경’이었고, 그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이태리와 연결되었다.
유명한 철학자 스피노자는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안경의 렌즈를 갈고 닦았다고 한다. 아마도 정성을 다해 갈고 닦았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정성을 다해 안경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 소망을 담았다.
“안경과 이태리가 도대체 무슨 관계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로 안경의 역사를 보면 이태리가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현재까지 발표된 안경의 역사에 대한 대부분의 논문들은 안경의 시작이 이탈리아 베니스의 유리공들에 의해 최초로 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이탈리아가 안경의 발상지요, 안경의 원조인 셈이다.
그리고 그 당시 이태리는 첨단 유행의 패션과 멋의 나라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의미와 세련미가 어우러진 이름으로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그런 생각이 맞아 떨어져 ‘이태리 안경원’이라는 상호는 쉽게 널리 알려졌다. 아무튼 ‘이태리 안경원’이라는 상호가 자리를 잡고 유명해지자, 외국의 나라 이름이나 도시 이름을 딴 안경원들이 여기저기 생겨났다.
얼마 전, 한 지인이 시 한편을 소개해주었다. 정다혜 시인이 쓴 ‘스피노자의 안경’이라는 시였다.
그 시를 읽노라니 40여년 전 스피노자의 안경을 생각하며 ‘이태리 안경원’이라는 상호를 지을 때가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아내의 안경을 닦는 남자/ 오늘도 안경을 닦아/ 잠든 내 머리맡에 놓고 간다/ 그가 안경을 닦는 일은/ 잃어버린 내 눈을 닦는 일/ 그리하여 나는 세상에서 가장 푸른/ 새벽과 아침을 맞이하지만/ 그때마다 아픔의 무늬 닦아내려고/ 그는 얼마나 많은 눈물 삼켰을까/ …(중략)… / 잃어버린 내 한쪽 눈이 되기 위해/ 스피노자가 된 저 남자/ 안경을 닦고 하늘을 닦아/ 내 하루 동안 쓴 안경의/ 슬픔을 지워, 빛을 만드는/ 저 스피노자의 안경(시집 ‘스피노자의 안경’에서)참고로 정다혜 시인은 35세 때 뜻하지 않는 교통사고로 한쪽 눈과 사랑하는 딸을 잃는 슬픔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고통 속에서도 “잃어버린 한쪽 눈보다 더 밝은 빛이 되어주는 스피노자의 안경”과 같은 남편이 있기에 결코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눈을 반짝인다고 고백한다. 안경을 통한 부부 간의 지극한 사랑과 내일을 향한 희망이 참으로 감동적이다. 늘 좋은 안경을 만들려고 애쓰는 내게는 한결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