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어계급사회

2013-10-15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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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시대 노예의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그 차이가 심한 경우 거의 백 배에 이를 정도였다. 가장 비싼 노예는 고급의 그리스어에 정통하고 학문이 뛰어난 그리스인 노예였다.

그리스어에 통달하지 못하면 축에 끼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리스어가 능숙한 것은 물론이고 그리스적인 교양이 몸에 뱄다. 그것이 당시 로마 상류층 사람들이 염원하던 이상적인 교양인의 모습이었다.

때문에 고급의 그리스어를 가르칠 수 있는 노예는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것.


줄리어스 시저는 로마의 명문 귀족 출신이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그리 부유한 편이 못 돼 그리스인 가정교사에게 배울 수 없었다. 차선으로 선택된 게 그리스 교육을 받은 갈리아인 가정교사. 그를 통해 그리스어와 교양을 익혔다고 한다.

자고 나면 한 가지씩 비리가 드러난다. ‘국제중학교’라고 했나. 그 특수학교 편·입학을 둘러싸고 요즘 한국에서 나도는 말인 모양이다.

외국에서 귀국하는 학생들의 국내 적응을 돕는다. 조기유학 수요를 국내에서 흡수한다. 이런 목적 등으로 세워진 게 한국의 국제중학교다. 그 국제중학교가 언제부터인지 귀족학교로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비리의 온상인 양 비쳐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름 석 자만 대면 알만 한 사람들의 아이들이 이 학교에 다닌다. 거기다가 삼성가의 자녀가 입학했다. 그러자 곧바로 제기된 것이 부정입학 의혹이다. 결국 검찰이 수사에 나서고 국회에서까지 논란이다.

왜 이토록 논란일까. ‘영어계급사회화’에서 그 원인이 찾아진다는 것이 한 쪽에서의 지적이다.

‘영어에 능통하다’-. 이것이 한국사회에서 의미하는 것은 혹심한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도 있다. ‘상류층 사람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한다.

유치원 아이들도 영어공부를 한다. 영어, 영어, 영어. 한 마디로 영어의 광기에 빠져든 게 한국 사회라는 것이다. 나만 안하면 뒤쳐진다는 불안감에다가, 상류층으로의 신분상승욕구가 그 광기를 부채질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한 번 이런 가정을 해보자. 한국사람 모두가 영어를 잘한다. 그럴 때 어떻게 될까. 영어가 아닌 무엇인가가 계급을 가르는 도구로 영어의 기능을 대신 하지 않을까. 그것이 무엇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국제중학교를 폐지해라. 한 쪽에서의 주장이다. 그 심정이 이해는 간다. 그렇지만 그게 과연 능사일까.

국제 공용어로서 영어의 위력이 날로 거세지면서 저 콧대 높은 유럽에서조차 ‘대학 강의 영어화’가 이제는 대세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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