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코트카반도에서 부르는 연가

2013-10-01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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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은 가장 쓸쓸한 달,
그대가 만약 추코트카반도에 가게 된다면
그건 베링해의 우울한 샹송을 가슴으로 듣는 기회가 될 거예요.
순록들은 두툼한 고요를 몸에 두르고
한 뿌리 한 뿌리의 이끼를 뜯으며
짧은 툰드라의 여름을 건너온 밤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 밤이 물러가고 나면
주위엔 온통 어슬렁거리는 짐승들의 영혼과
추억을 쫓는 사냥꾼들의 휘파람소리가 넘쳐날 거예요
몇 날 며칠의 백야와
바알간 심지 돋우는 램프의 사자와
그 불빛 아래 쪼그리고 앉은 생의 고단함이
허공에서 그댈 부르겠지만,
그건 그대가 사랑했던 그 모든 것들이
그대의 마음을 뛰쳐나와 오로라처럼 배회하는 것이라고 믿으세요
… 중략 …
거기
내 슬픔의 백야
그 얼음집 밖으로 올가미를 던지는
사냥꾼의 밤을 소리 없이 걸어가 보세요
갈라진 슬픔 부드럽게 감추고
당신의 가장 우울한 샹송을 연주해 주세요
제 짝을 얼음 바다에 묻고 춤추는 축지족 젊은 사냥꾼의 이름으로

한석호( 1958-) ‘추코트카반도에서 부르는 연가’

시월이다. 이제 가을은 가을의 우울로 풍요로울 것이다. 누군가는 베링해의 혹독한 바람을 맞으며 제 짝을 묻고 춤추는 축지족 젊은이를 위한 샹송을 연주한다.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오로라처럼 뛰쳐나와 북극을 배회하고 슬픔을 부드럽게 감춘 순록들은 두툼한 고요 속에 밤을 기다린다. 얼음집 밖으로 올가미를 던져 이 세상에서 가장 춥고 건강한 고독을 낚는 사냥꾼들. 그렇다. 가을은 몰락의 계절이 아니라 겨울이 막 피어나는 싱싱한 계절인지 모른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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