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란 말이 요즘은 별로 들리지 않는다. 60년대 생에, 80년대 학번에, 30대인 세대. 그 세대가 40대를 넘어 50대로 진입하게 되면서 생긴 현상 같다.
이제는 한 물 간 유행어가 됐지만 ‘386’이란 숫자 속에는 다소 특이한 의미가 담겨있어 보인다.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저항의 세대, 혹은 더 좁히면 운동권 출신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 된다.
하기는 80년대 대학을 다녔다는 것 자체가 그렇다. 전두환 정부의 5공 시절이고 6.10 항쟁의 시대다. 그 시절 그리고 한국의 대학가는 주사파가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평범하게 살아오지 않았다는 일종의 차별적 개념을 주는 게 386세대다.
그 386세대답게 나름대로 다소간의 ‘투쟁 경력’도 있다. 그런 한 언론인의 초년 기자시절의 아주 작은 일화다.
고등학교 동창회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갈까 말까. 상당히 망설였다고 했다. 그 날의 주빈은 대선배이자 5공 시절의 거물급 실세. 결국 가기로 마음먹었다. 기자 입장에서 그런 정치적 거물을 가까이서 관찰할 필요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의례적 행사가 끝나고 술 파티가 벌어졌다. 이내 폭탄주가 돌려졌다. 그러자 나온 제창이 ‘우리가 남이가!’였다.
“참 이상합디다. 그 순간 홱 도는 거예요. 5공 세력에 대한 평소의 경계심, 적대감이 없어지면서 ‘우리는 하나다’란 뭐 그런 분위기에 압도되고 만 것이지요.” 그의 이야기다.
유신시절에도 잘 나갔다. 5공, 6공 시절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그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는 ‘초원복집 사건’이다. 1992년 12월 부산지역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당시 여당 대통령후보 지지를 모의한 것이 폭로된 것이다.
특히 그가 유명세를 탄 것은 “우리가 남이가?”란 말이다.
공안검사에서 검찰총장, 법무장관 등을 지낸 그는 이 사건 뒤 정치권에 진입해 15,16,17대 국회의원을 지낸다. 그리고 화려한 양지에서의 공직생활을 접었다. 과거의 인물이 된 것이다.
그런 그가 다시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발탁된 것이다. 고희(古稀)도 훨씬 지났다. 때문에 웬만한 장차관은 공직자 서열로 따지면 손주뻘에 해당된다. 그는 다름 아닌 ‘왕실장’으로 불리는 김기춘이다.
그가 비서실장에 임명된 지 한 달 반여. 굵직굵직한 사건의 연속이다. 감사원장이 중도 사퇴했다. 그렇지 않아도 주요 공직 인사를 둘러싸고 퇴진 압력 등의 소문이 무성한 마당에. 동시에 불거진 것이 대형 공안사건이고, 또 채동원 검찰총장 사퇴로 요약되는 검란(檢亂)이다.
오비이락(烏飛梨落), 우연의 상황인가, 아니면…. 아무래도 뭔가 권력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