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올림픽의 저주와 축복이

2013-09-10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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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길(吉) 속에 흉(凶)이 있고 흉(凶) 속에 길(吉)이 있네…” 새옹지마 같은 인생이다. 종잡을 수 없이 변전하는 인생을 읊은 옛 노래다.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다. 그 순간 전 국민이 하나가 된다. 전 세계인이 주시하는 대잔치, 그 주인공이 된다는 긍지에서다. 그뿐이 아니다. 국위가 선양된다.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부가가치가 따른다. 그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그 올림픽이 그러나 항상 축제이고 축복인 것만은 아니다. 저주가 되기도 한다.


그 최근의 케이스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다. 고대올림픽의 발상지다. 근대 올림픽이 처음 개최됐다. 그 아테네에서 108년 만에 다시 올림픽이 열리게 됐다. 전 그리스는 들떴다.

게다가 그렇게 바랐던 EU가입이 이뤄진데서 온 자신감이 올림픽 특수와 만나 아테네의 밤은 불야성을 이뤘다.

그리스는 올림픽예산으로 16억 달러를 책정했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 10배에 달하는 160억 달러를 썼다. 그렇게 흥청망청 치러진 게 아테네 올림픽이다. 그 세기의 잔치는 그러나 세기의 저주가 되다시피 했다.

그리스의 심각한 재정적자는 유럽 재정위기로 이어지고 유럽경제, 더 나가 세계경제의 파탄을 가져올지도 모를 불씨로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은 때로 그 보다 더한 저주도 불러온다. 1936년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나치 독일은 그 무대를 아리안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등 체제선전에 적극 이용했다.

결과는 그러나 정 반대로 나타났다. 나치 체제가 10년도 못가(1945년)에 패망하고 만 것이다.

1980년 당시 소련은 모스크바 올림픽을 공산체제선전 무대로 활용했다. 그러나 이후 10년 남짓한 세월이 지난 1991년 소련은 붕괴된다. 1984년 동계 올림픽이 열린 곳은 유고슬라비아의 사라예보였다. 7년 후 공산체제 유고슬라비아 역시 붕괴의 운명을 맞는다.


올림픽은 큰 축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88 서울올림픽이 그렇다. 그 지긋지긋한 군부독재를 끝내는 계기가 됐다. 88 올림픽 이후 민주주의가 본궤도에 오르고 한국은 선진 사회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그보다 24년 전 도쿄 올림픽도 일본으로서는 큰 축복이었다. 세계 2차 대전에서 패한지 20년이 채 안 된 상황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은 전쟁의 상처를 씻고 경제성장을 이룩할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 일본이 반세기, 56년 만에 또 다시 올림픽 개최국으로 확정됐다. 이 두 번째 도쿄 올림픽은 그러면 축복이 될까, 아니면 저주가 될까.

침략의 과거사를 진정으로 회개하고 책임 있는 문명국으로서 면모를 쇄신한다. 그런 자세로 도쿄 올림픽을 진정한 화합의 무대로 만든다. 그럴 때 축복이 쏟아지는 것이 아닐까. 하여튼 성공적인 올림픽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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