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실패한 블러핑

2013-09-06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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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에는 ‘블러핑’(bluffing)이라는 게 있다. 자기 패가 별로 좋지 않은 데도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 패가 좋은 척 하며 큰돈을 거는 것이다. 이 때 상대방이 죽어주면 블러핑을 한 사람은 횡재를 하게 된다. 개패를 가지고도 판돈을 쓸어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상대방이 이런 낌새를 알아차리고 이를 받아주거나 거기다 보태서 쳐 버리면 블러핑을 한 사람은 낭패를 보게 된다. 원래 건 돈에다 상대방을 속이려 지른 돈까지 모두 잃게 되기 때문이다. 포커에서 돈을 따려면 패도 잘 들어와야 하지만 상대방의 표정은 잘 읽고 자기 표정은 감추는 것이 꼭 필요하다. ‘포커 페이스’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지금 시리아 내전을 둘러싸고 시리아의 독재자 아사드와 오바마 사이에 포커 판이 벌어지고 있다. 판이 끝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만 현재로서는 오바마가 오히려 몰리는 형국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오바마의 블러핑 때문이다. 그는 2012년 8월 시리아 정부가 화학 무기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넘지 말아야 할 “붉은 선”(red line)이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미국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면 아사드는 겁을 먹고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아사드는 그해 12월 소규모지만 화학무기를 사용해 최소 7명의 자국민을 죽였다. 그러자 오바마는 처음 얘기한대로 보복 공격을 하기는커녕 ‘누가 어떻게 사용했는지 자세히 살펴봐야겠다“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거기다 백악관은 한 술 더 떠 ”레드 라인 발언은 실수“라며 말을 바꿨다.

여기에 고무된 아사드는 이번에는 지난 8월 400명의 어린이를 포함 1,400명의 민간인을 화학무기로 살해했다. 이제는 오바마도 이를 외면할 수 없게 됐다. 이마저 방치할 경우 아사드가 화학무기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더 죽일지 알 수 없을 뿐더러 북한 등 깡패국가와 알 카에다 같은 테러 조직이 앞으로 유사시 마음 놓고 화학무기를 사용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리아 문제에는 죽기보다 개입하기 싫은 것이 오바마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덴 미국민 과반수가 시리아 내전 개입에 반대하고 있고 같은 회교도 테러 조직인 헤즈볼라와 알 카에다가 뒤엉켜 싸우고 있는 이곳에 잘못 뛰어 들어갔다가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의회 공 넘기기다. 유엔 조사단이 떠나자마자 미사일 공격을 퍼부을 것으로 사람들이 예측하고 있던 와중에 그는 느닷없이 시리아 공격에 앞서 의회의 승인을 받겠다고 나섰다. 그리고는 스톡홀름 방문 중 화학 무기 사용에 관해 “붉은 선을 그은 것은 내가 아니라 국제 사회며 연방 의회”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의회가 승인을 안 해주면 승인을 안 해줘서 공격을 못했고, 해주면 의회가 하라고 해서 했으니 나는 책임이 없다는 발상이다.

미사일 몇 방 쏜다고 시리아 사태가 해결될 리도 만무하지만 시리아 화학무기 사용과 관련해 지금까지 오바마가 보여준 태도는 자유세계 수호자로서는 낙제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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