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발 딛고 누리는 천국

2013-08-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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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한 나 <남가주광염교회 사모>

얼마 전 포틀랜드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30년째 살고 있지만 가끔 타주를 다녀올 때면 몸에 배인 편리함들이 자동적으로 채점된다. 메마른 땅에서스프링클러로 자라나는 나무만 보다가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로 춤추며 자라는 나무들의 초록색 미소가 나를 먼저 반겨주었다. 온몸으로 감지된 촉촉한 기운에 나도 모르게 깊은 숨을 들이쉬며 푸르른 공기를 온몸에 부었다. 아!참으로 상쾌한 기운이 영혼의 세포까지 웃게 만든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푸르른 기운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만나면서 더 깊이 느껴졌다. 순박한 자연이 착한 사람들을만드는 것일까? 순수하고 정감 넘치는 얼굴 표정과 삶의 여유를 보며 며칠 동안 순화되어지는 나를 발견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 잠자리에 드는 늦은 밤까지 이민자의시계는 몇 배로 더 빨리 돌아간다. 매일 반복되는 일들을시작하며 감격과 기쁨으로 달려가는 이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어느 누구에게나 세금도 안 내고 똑같이 주시는24시간.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하루를 시작하면서 설레임으로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심각한 비정상이다. 언제부터어깨를 늘어뜨린 채 웃지 못하는 바쁜 이민자들로 살아가게 되었을까 둘러보며 마음이 절여온다.

우린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이 땅에 살아가는유일한 목적일 때가 많다. 캄캄한 새벽에 벌떡 일어나 눈을비벼가며 일터로 달려가는 이유, 맘에 안 드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억척같이 돈을 모으는 성실함의 속셈. 잠도안 자고 24시간 가게를 오픈하며 휴일도 없이 365일을 달려가는 무서운 속도의 노동력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무리를 해서라도 큰 집을 사야 하고, 크레딧 카드를 긁어서라도명품 옷과 고급 차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의 뿌리는 무엇일까? 어떻게 보여져야‘ 잘 먹고 잘 사는 인생’이라는 이름표를 붙게 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민목회를 섬기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장례식과 임종을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평생 돈도 많이 벌었고, 명예와 신용도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데 죽음 앞에 선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은 반응뿐이었다. “너무 짧은 인생이었는데…가치 있는 것에 내 삶을 투자하지 못해서 너무 후회가 됩니다.” 호흡이 멈추기 바로 직전에는 누구나 영안이 열려 사후의 세계를 말해주고 떠난다.‘ 검은 옷 입은 죽음의 사자가 나를 데리러 왔다’며 두려움 가득한 공포의 외침이던지,‘눈이 부셔요… 흰옷 입은 예수님이 벌떡 일어서서 저를 영접해 주시네요. 천국에서 만나요!’ 하시며 환한 미소로 임종을 하시던 어떤 권사님의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천국의 증표로 내게 남아 있다.

평생 목회하시고 은퇴하셔서 선교사로 사역하시는 친정 부모님께서 은퇴하시던 날에 오남매에게 남기신 말씀은‘결국 사랑한 것만 남는다’였다. 지금까지의 업적과 내 손에남은 돈의 액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사람의 흔적과 열매라는 말씀이었다. 어려운 사람을 돕기위해 기도했는데 결국 그 사람이 회복되기 전에 내게 먼저천국이 임했었고, 보여지는 상황을 넘어 보이지 않는 마음의 회복을 위해 애쓴 눈물의 기도들이 상대방을 움직이고,변화하게 하는 놀라운 하늘의 힘이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셨던 삶이셨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 결국 내가 선택한 천국을 내가 누리며 사는 인생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비록 모순 많은 이 세상에 두 발을 딛고 살지만 마음에 누리는 천국의 기쁨이초막이나 궁궐이나 모든 곳이 하늘나라가 되게 하는 놀라운 힘인 것을! 그러기에 매일이 소중하고 이민땅에서도 황홀한 감격은 계속될 수 있음을. 아름다운 8월이 달아나려한다. 두 팔을 내밀어 어깨동무하며 덩실덩실~ 황홀한 하늘춤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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