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너츠의 여왕
2013-08-22 (목) 12:00:00
그녀가 등장한다.
그녀의 구두 뒤축에서 우수수, 사막이 떨어진다. 그녀는 사막을 가로질러 왔으리라. 그녀의 머리카락에는 모래 폭풍이 묻어있다. 모래 폭풍은 그녀의 흔적을 지우며 사막을 지나왔다. 사막의 흔적이 신발 한 켠에서 웅성거린다. 그녀는 도너츠의 여왕. 한쪽 벽면 가득 펼쳐진 도너츠 앞에서 미간을 찌푸리는 그녀의 모습이 푸른 선글라스 너머로 새어나온다. 화사한 도너츠 판매점의 불빛이 그녀의 피부를 환하게 채색한다. 도너츠에 묻어있는 시나몬가루를 보며 그녀는 사막의 모래를 떠올린다. 그녀의 가슴 위로 액자처럼 사막이 펼쳐진다. 마감시간을 앞둔 도너츠 판매점. 그녀는 쟁반 위에 도너츠를 담는다. 그녀는 사막을 털고 자리에 앉아 도너츠를 한입 가득 베어 문다. 그녀가 타고 온 낙타가 도너츠 판매점 밖에서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사막의 흔적을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쩌면 그녀는 사막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우수수, 사막이 떨어진다.
그녀는 낙타를 끌고 사막을 향해 퇴장한다.
조동범 (1970- ) ‘도너츠의 여왕’ 전문
환한 도너츠 가게 안으로 한 여자가 들어선다. 사막을 가로질러온 여자, 구두 뒤축에서 우수수 모래들이 떨어지는 그녀의 선글라스를 낀 모습에는 환상적 카리스마가 있다. 시인은 그녀를 도너츠의 여왕이라 부른다. 사막에서 왔고 사막이 되어 사라져갈 그녀는 허무의 여왕이기도 하다. 낙타를 끌며 그녀는 퇴장하고, 시인은 무상한 도시적 환각의 한순간을 액자 속에 모래바람처럼 가둔다.
임혜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