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96 Vandam

2013-08-20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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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침대를 뉴욕시로 가져갈 거야
찢어진 담요와 늘 가지고 다니는 시트면 침대는 완성되지;
나는 이것들을 밀며 세 개의 캄캄한 고속도로를 건너거나
600,000 희미한 별들 아래 펼쳐진 해변을 지나 갈 거야.
침구를 가지고 가는 이유는 연약하고 지친 친구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기 위해서야.
혹시 꿈과 환상이 스쳐 지나갈지 모르니까
베개는 가능한 한 가까이 끼고 있을 거야.
나는 나만을 위한 야외 비상계단에서 잠이 들고
저 아래 거리로부터 들려오는 쓰레기 수거차의 육중한 소리와
위층 창가에서 커피 끓이는 냄새를 맡으며
깨어날 거야, 망연함과 배고픔 속에서

제랄드 스턴(1925- ) ‘96 Vandam *’ 전문(임혜신 역)
*뉴욕의 거리이름

가진 자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잃을까 걱정하며 산다고 한다. 많으면 많을수록 더 그렇다고도 한다. 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시 속의 노숙자는 다르다. 그에게는 지친 사람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조심스럽고 착한 마음이 있다. 하이웨이의 위험한 어둠과 바다와 별을 지나 이르는 고단한 뉴욕, 아파트 밖의 계단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자. 커피와 쓰레기차 소리에 깨어나는 그의 아침이 슬프고 아름답고 미안하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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