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자리 지키기

2013-08-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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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재 동 <가톨릭 종신부제>

있는 그대로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바로 창조의 ‘질서’요 자연법칙이다. 이것을 깨달을 때 인생 삶이 흔들리지 않고 안정된다. 제자리를 지키며 사는 동안은 삶이 행복하고 심령이 평안을 느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제자리’를 지킨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이것을 깨달아 아는 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득도’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안이 열린다’는 말 아닐까?살아생전 벽만 바라보며 인생의 실체를 깨우치기 위해 면벽 수도한 성철 스님께서 중생들에게 던진 단 한마디가 그래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한 모양이다.

인생 고해 속에서 신음하는 중생들이 마음의 번뇌를 해결하고자 고승을 찾아왔는데, 고작 들려준 한마디가 실없는 어린아이의 ‘말장난’ 같은 소리일까 하고 아니꼽게 여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작고한 성철 스님이 되살아나 지금 21세기 이 세상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면 과연 무슨 말씀을 하실까? 모르긴 해도 혹시 “남자는 남자요 여자는 여자로다” 하시지는 않을는지 궁금증이 인다. 왜냐하면 동성애도 부족하여 ‘동성 간의 결혼’까지 행해지고 있는 별난(?) 세상이기에 말이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브라질에서 일주일간 거행된 ‘세계 청소년 신앙대회’를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지신 모양이다.

1시간20분가량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신 자리에서 교황님은 “동성애는 죄악이다. 그러나 동성애자도 우리의 형제다. 그러니 그들을 차별하거나 업신여기지 말고 그들이 사회와 잘 통합할 수 있도록 그들을 이해하고 안아주자” 하시면서 ‘만일 어떤 동성애자가 선한 의지를 갖고 신을 찾는다면 내가 어떻게 그들을 심판할 수 있겠는가?’ 라고 자문하셨다.

교황님의 말씀은 행위 자체는 죄악이지만, 그 사람은 미워해서는 안 되는 우리의 형제라는 메시지였다. 그런데 이 확실하고도 선한 교황님의 형제애적 발언마저도 일부 매스컴에서는 ‘교황, 동성애 인정하다’라는 왜곡기사를 써서 마치 가톨릭교회가 동성애나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으니 이 얼마나 무질서한(?) 뒤죽박죽인 세상인가!그러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인 스님의 설법이 심심풀이 말의 장난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리 지킴이 인간 삶의 기본임을 쉬운 말로 잘 깨우쳐 주셨음을 알 수 있겠다. 간단한 예로, 혹시 물과 산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한다면 세상이 어찌될까? 바다에 있어야 할 물이 육지로 밀려오면 그게 바로 해일이요, 심하면 쓰나미다. 건물은 파괴되고 사람들은 바다 속으로 휩쓸려가 죽거나 이재민이 생기는 자연재해가 발생한다. 물이 제자리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 사회와 개인의 삶 속에 발생하는 모든 백팔번뇌가 인간이 ‘제자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천방지축 제멋대로 날뛰며 사는 ‘인과응보’임을 설파하신 것이라고 여겨진다.

요사이 자고 나면 떠들어대는 ‘서해 북방 한계선’(NLL)의 진실공방으로 여야 간에 서로 자기 측이 진실이라고 진흙탕 튀기는 싸움만 해도 제자리를 벗어난 결과 아니겠는가. 그리고 최근 남가주 글렌데일시 중앙도서관 앞 공원에 건립된 ‘평화의 소녀상’ 제막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진짜 양심이 ‘제자리’하고 있는 국가라면 “아무리 전쟁 중이라 했어도 인간이 결코 해서는 안 될 죄를 지었으니 용서바랍니다”하고 사죄해야 할 일본이다. 그런데도 사죄는커녕 10만이 넘는 열서너 살의 꽃다운 망국의 딸들을 끌고 가서 군대의 위안부로 삼아 수많은 인생을 짓밟았으면서도 그런 일이 없었다고 발뺌하거나 심지어는 피해자를 ‘자발적 매춘부’라고까지 덮어씌우며 두 번씩이나 죽이고 있는 일본이다. 그래서’ 평화의 소녀상’ 제작은 양심을 ‘제자리’로 다시 돌려놓는 인간승리의 현장이다.

그래서 일까, 매일의 삶 속에서 ‘사람아, 나 (제자리)에게로 되돌아오너라’ 부르시는 하느님의 음성이 자꾸만 뇌리에 맴돌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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