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치기

2013-08-0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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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범 수 <치과의사>

지난 주말, 류현진과 추신수의 경기가 열린 다저스 구장은 일찌감치 티켓이 매진되었다. 동창회를 통하여 어렵게 단체 티켓을 구해 구경을 가게 되었는데 프리웨이를 내리자마자 암표상들이 두 배 넘는 가격으로 흥정을 하는 것을 보았다. 웃돈을 주고라도, 경기를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도덕논리를 넘어선 편리함이 될 것이다.

내·외야석을 모두 채운 관중들은 구단 측이 제공한 무제한 무료 핫도그 등을 즐겁게 입에 넣으면서 사방을 휘둘러본다. 홈플레이트 바로 뒤, 선수들의 표정까지 다 보이는 자리는 아직도 비어 있다. 그 자리의 주인들은 천천히 나타나서 일찍 자리를 뜨기도 하였다. 그들이 야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선발출전 선수들의 타율이나 신변잡사까지 쭈르르 꿰고 있는 젊은 팬들이 최고 관람석 주인보다 야구를 더 즐기고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박스 오피스에서 길고 긴 줄에 서서 기다릴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줄서기란 할 일 없는 사람들만을 위한 차별적 상행위’라고 공격하기도 한다. 이 세상이 ‘가진 자’만을 위한 차별사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한 반대공격이다.


얼마 전 오하이오 햄버거 집에서 일어난 사건 하나. 모두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30대의 한 여성이 문을 열고 들어서더니 라인 중간으로 슬쩍 끼어들었다. 처음엔 에잉? 이게 뭐야? 하고 바라보던 뒷사람들 가운데 한 남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창피하지도 않소? 당신은 라인이 안 보인단 말이오? 감히 새치기를 하다니!” 그 소리를 들은 여자가 문밖에 있던 남자친구를 손짓으로 불렀다. 잠시 후 풋볼선수보다 큰 몸집의 한 사나이가 휘적휘적 들어서더니 다짜고짜 불평을 했던 남자의 얼굴에 정면으로 펀치를 날렸다.

우리 교회에서는 여름 수양회를 위하여 바닷가 캠프 사이트를 알아보았으나 이미 일년 전에 모두 예약이 끝났다고 했다. 그러나 지역별 벼룩시장인 크레그 리스트에 가면 웃돈을 붙인 이용권이 나와 있다.

줄서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심리를 이용한 제도가 바로 급행료이다. 새치기 권리를 상품으로 만든 것이다. 급하게 해외여행을 할 사람들은 급행료를 내면 빨리 패스포트를 받을 수 있다. 디즈니랜드 같은 놀이공원에 가서도 돈을 더 내면 우선 탑승권을 준다. 땡볕에 줄을 서서 하루 종일 기다릴 필요가 없다. 몇몇 프리웨이의 카풀 레인은 패스트 트랙으로 바뀌었다. 돈을 내면 빨리 갈 수 있다. 줄을 서야만 표를 파는 공연에는 돈을 주고 홈리스 같은 사람을 대신 고용해서 (라인 스탠더) 서있게 만들고 주인은 천천히 나타나 티켓을 거머쥐면 된다.

세상은 돈을 더 내고 새치기를 하도록 인기가 좋은데 왜 교회는 무료라는 데도 (목이 마른 사람도 오십시오. 생명의 물을 원하는 사람은 ‘거저’ 마시십시오.-요한계시록 22:17b) 관심 갖는 사람이 드물까? 다저스 구장 단체관람석 가장 싼 끝자리에 앉아 무료 핫도그를 씹으며 혼자 별 생각을 다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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