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버지의 역사

2013-08-01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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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숙 화 가

“1965년 4.19 혁명 5주년 기념식을 끝낸 대학생들이 보슬비 내리는 종암동에서 침묵의 데모를 하고 있다.”일본인이면서 한국을 25년간 지켜본 보도 사진가인 구와바라 시세이의 사진을 보며, 돌아가신 아버지의 역사를 생각한다. 6.25 동란 때 19세였던 아버지는 군에 입대했고, 나는 백마부대의 무훈 얘기를 들으며 자랐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전국의 대령 중 가장 청렴결백한 군인으로 선정되어 국방부 장비 과장을 지내셨고, 5.18 광주 항쟁 때는 기아 산업에 근무하셨다.

아버지는 광주 항쟁 중 학생과 시민들에게 자동차를 내어주셨고 항쟁이 끝나자, 회수하는 과정에서 간경화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아버지는 국가와 국가 원수인 박정희 대통령을 의심 없이 신봉하고, 데모를 하는 학생들을 싫어하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역사는 불의의 역사라고 비판하며 나는 늘 아버지와 반목했다. 철저히 정부 편이었던 아버지가 부패한 권력으로 인해 고뇌한 것은 삼선 개헌 때 그리고 광주 항쟁을 겪으시면서였다.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 “그가 살았다고 웃지 않고, 죽었다고 울지 않겠다”라고 하신 게 아버지로서는 정부와 반목한 한 마디의 말이었다. 예술가나 큰 스님으로 살았어야 할 분이 군 생활을 하며 말없이 폭음을 하여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자신이 신봉하는 권력의 부패를 경험하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를 생각하면 애통한 마음이 든다. 친 정부적인 그가 정부에 대해 느낀 회의와 외로움을 누구와 나눌 수 있었을 것인가. 반면, 광주에서 자라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나는 암울한 우울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데모를 해서 감옥에 가지 않는 게 차라리 죄스러운 시대의 죄의식에 시달렸다. 친구의 형은 감옥에 있고, 다른 친구의 형은 도망 다니고 있고, 수업 시간에는 데모대의 함성이 들려 왔다. 그 당시의 나로서는 명백히 알 수 없던 암울한 시대의 우울에 보들레르를 읽으며 퇴폐와 데카당스로 도피했다.

아버지는 60세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아버지의 삶을 기억하며, 이제야 아버지의 외로움을 생각한다.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것을 인생의 전부로 여겼던 철없던 딸이 이제야 철이 드는지, 그 존재의 아름다움과 외로움을 깊이 생각해보곤 한다.

명동 성당에서 정의구현 사제단의 함세웅 신부님의 주례로 결혼하여 아버지는 안기부에 불려가셨고, 내가 중병이 들자 병원비 때문에 아버지는 직업 군인의 꿈인 별을 포기하고 예편하셨다. 그런 아버지의 희생은 돌아가신 후 고모부에게서 들었다.

아버지는 천둥이 치고 번개가 들이쳐도 뿌리 깊은 나무처럼 가족을 지키고 나라를 사랑하는 외로운 장수였다. 아버지의 사랑과 고뇌를 떠올리며 외지의 땅에서 이토록 아버지가 그리운 것은 웬일일까. 소년처럼 깨끗이 함박웃음을 터뜨리던 모습이 자꾸 그립다. 누군가 “뜰 앞의 잣나무”라고 했던가. 아버지와 반목하던 시절에도 하늘은 푸르르고 나뭇잎들 싱그럽게 바람에 흔들렸는데, 그 때엔 온통 어두웠다.

어리석은 시인들의 피투성이 시를 암송하던 어리석은 시절,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햇살과 바람에 싱그러운 나무처럼 살면서, 전쟁과 혁명의 역사 속에서 두 눈 부릅뜨고 스스로 곧바르게 살아내며 죽음을 맞았던 아버지의 가슴을 안아줄 수 있으련만…세상에 태어나 내가 기억하는 가장 출중한 정신의 인간이었던 그에게 마음의 돌을 수없이 던졌던 젊은 시절의 나 자신을 떠올리며, 마침내 아버지의 역사와 화해하는 오늘, 한 장의 사진에 전해오는 암울한 시대를 바라보니, 마치 악몽을 꾸었던 듯 싶다.

자유와 평화와 정의가 춤추는 새로운 시대는 정녕 온 것일까? 창을 열어 대나무 잎새에 흔들리는 바람을 바라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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