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의 묘약

2013-07-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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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한 나 <남가주광염교회 사모>

청포도가 익어가는 아름다운 계절 7월이 지난다. 갈래머리 여학교시절 애송시였던 ‘청포도’를 읊어 가는데 왠지 모를 눈물이 삐춤 거리고 흘러나와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다닌다. 내용은 희망인데 구구절절 애잔함이 느껴진다. 알알이 영글어가는 청포도에 담긴 절절한 나라사랑의 눈물이 차디찬 감옥바닥에서도 희망을 노래하게 했을까? 어려운 현실을 뛰어넘는 키다리 아저씨같은 잠깐멈춤의 행복을 고맙게 누리며 새삼스레 ‘사랑의 파워’가 만져진다. 매년 칠월이 시작되면 육남매와 남편이 마련해주는 깜짝 생일파티가 올해도 어김없이 더해졌다.

아이들이 성년이 되면서 깊은 사랑의 고백과 축복의 메시지를 빼곡하게 담은 대형생일카드를 올해는 아예 두껴운 포스터로 만들고 늙어가는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건강과 미용선물세트에 사랑잔소리까지 두둑하게 받았다. 별로 잘 해 준 것도 없이 늘 교회일로 바쁜 빵점짜리 엄마의 미안함까지 헤아리며, 매년 생일을 지날 때 마다 일곱 식구가 쏟아놓는 넘치는 격려와 축복의 말들로 하늘보약을 먹여주니 육남매를 낳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 사랑의 힘이 더해지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우리가 쓰는 모든 생활용품에도 그것을 발명한 동기를 살펴보면 그 누군가를 편하게 해주려고 시작된 착한동기들이 편리하고 안전한 요리기구와 가구등의 멋진 제품으로 거듭난 것임을 알게 된다.

언젠가 우연히 인도네시아의 가구공장을 오랜 시간 촬영한 다큐영상을 보게 되었다. 평생을 수제 가구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하루 종일 그 일에 매달려 사는 이들의 눈빛 속엔 고도의 집중력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방심하면 손이 잘려나갈지도 모르는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는 그들 이마의 굵은 땀방울이 어느새 내 심장에도 뚝뚝 떨어진다. 그것은 삶을 허락하신 신에 대한 ‘온몸의 감사예배’였다. 거룩하고 신성한 뜨거운 열정과 사랑이 딱딱한 나무의자 하나를 최고의 예술품으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들은 비록 에어콘도 없이 여름을 지내며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게 인생을 누리고 있는 축복된 사람들이었다. 선교지를 둘러보고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해서 춤추며 섬기시는 귀한 분들을 만날 때마다 심장 속 나팔이 소리는 낸다. “정말 멋져요!”,”부럽습니다!”,”한번뿐인 인생인데...정말 시간이 없군요!”라는 가사와 함께.

즐겨듣는 오페라 《사랑의 묘약 L’Elisir d’amore》 제2막에서 주인공 네모리노가 부르는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들을 때마다 내 심장에도 뜨거운 눈물이 흐르곤 한다. 마시게 되면 피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사랑의 묘약’.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흘리는 착한 눈물이 아닐까? 사랑은 사람은 순화시킨다. 삭막한 도시도 훈훈하게 만들고, 문제아도 우등생으로, 으르렁 거리던 원수까지도 친구가 되게 하는 놀라운 명약인 ‘진짜 사랑’은 돈도 안 든다. 요즘같이 불경기에 무더위, 장마소식까지 겹겹이 쌓여졌을 때야말로 그 효능은 백배로 드러난다. 손에 든 핸드폰도 내려놓고, 하루에 1시간씩만 골방에 들어가서 사랑하는 이를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음의 무더위, 정신을 뜯어먹는 모기떼들도 한방에 날려 보내고, 잘 익은 과일들을 이쁜 바구니에 담아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을 억제 할 수 없으리라. 사람을 살맛나게 만드는 사랑의 묘약! 이제 그 엄청난 효능에 빠져 행복한 8월의 창문을 활짝 열어 제키자. 온 우주가 나를 향해 연주하는 사랑의 교향곡이 ‘황홀한 서곡’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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