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풍 가는 날

2013-07-25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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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디지털 노마드
지금부터 짐을 챙기자
노트북컴퓨터 센트리노 1.8G/ 하드 80G
USB 메모리 512M
디지털카메라 900만 Pixel
MP3 플레이어 iPOd 60G
PDA 블루투스 내장 /SD와 CF를 동시에 내장
보이스레코더 SDR-5128MP
전자사전 리얼딕세이 RD-6200
자 떠나자
우주오락실, 신갈피시방, 죽전웹휴게실, 온세상인터넷방
온라인쇼핑몰, 온라인사이버증권, 사이버유명입시학원,
사이버네트워크교회
에로바다, 폰생폰사, 익스트림X, 트위스트닷컴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내 살던 곳
무지하게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정한용(1958-) ‘소풍 가는 날‘ 전문

현대인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가상공간 속의 방랑자이다. 매 순간 가속하는 문명의 광야에는 오락과 휴식, 섹스와 정보와 종교까지 위험하게 출렁인다. 사이버 세상을 떼 지어 몰려다니기도 하고 꿈과 먹이와 욕망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우리는 제2의 노마드, 정보와 욕망으로 뒤범벅된 거대한 가상-혼란-공간 속의 유랑자들이다. 시인은 알고 있다. 천상병 시인처럼 내 살던 곳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는 없으리란 것을.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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