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용기 있는 주인공들

2013-07-1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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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재 동 <가톨릭 종신부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죽을힘을 다해 사는 것이 인생의 참다운 용기다. 비바람 몰아치는 폭풍우에 좌절한 나머지 속수무책으로 넘어지기보다는, 폭풍우 가운데서도 춤을 출줄 아는 나무만이 살아남게 됨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일어난 ‘아시아나’ 비행기 참사의 비극 속에는 우리를 감동시킨 용기 있는 영웅들의 삶이 함께했다. ‘꽝’소리와 함께 비행기 꼬리 부분이 공항근처 방파제에 부딪쳐 날아갔다. 잠시 후 머리 위의 가방들이 떨어지는 가운데 ‘비상탈출’이 시작됐다.

300명 이상이 일시에 비상구만을 생각하며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을 개시하는 찰나에, 여승무원들의 죽음을 무릅쓴 행동이 수많은 생명을 살려냈다. 연약한 여자 승무원들이 자기 자신의 생사는 개의치 않고, 오직 탑승객의 구출만을 생각한 것이다. 이는 분명 인간 생사의 본능을 초월한 용기 있는 인간의 영웅적 행동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에게서 또 하나의 인간승리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목숨 걸고 탑승객들을 돌본 여승무원들의 용기 때문에 대형 참사인데도 인명피해가 적었다는 것은 그나마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알고 보면 인간 역사의 수레바퀴는 언제나 용기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이끌어져 왔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도 아브라함의 믿음과 용기 덕분에 차지할 수 있었고, 신이 주신 광활한 아메리카 대륙도 컬럼버스의 용기 때문에 발견된 것이다. 수천만의 목숨을 앗아갔고 아름다운 얼굴을 곰보로 만들어 평생을 절망케 했던 무서운 천연두 병도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젠너의 신념과 용기로 정복된 것이다. 젠너는 자신과 자기 아들의 몸에 직접 주사해서 얻어낸 실험으로 백신을 만들어내 마침내는 인류를 천연두병에서 영구히 해방시킨 것이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진리를 선포하려 오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바쳤기에 온 인류가 구원된 것이다.

죽음의 위력마저 그분의 사랑 앞에서 무력해져 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그 분을 따랐던 제자들과 수많은 순교자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까지 바쳐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분들은 진정으로 진리를 위해 몸 바친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조롱하는 군중 사이를 지나 골고타를 향해 걸어가시는 죽음의 길에서 피땀으로 얼룩진 그분의 얼굴을 닦아드린 여인 ‘베로니카’ 성녀의 용기를 부러워한다. 요한만 빼고 나머지 모든 제자들마저 도망쳐버린 그 무섭고 절박한 상황에서 그 여인은 용감하게 예수를 사랑할 수 있었기에 말이다. 얼마나 많은 경우, 우리는 체면과 두려움 때문에 몸을 사리면서 정의인줄 알면서도 못 본 척 해버린 경우들이 많았던가 말이다.

용기는 진정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다. 이 용기는 목숨마저 요구할 때가 많기에 자신을 내어줄 신념과 사랑이 없이는 소유할 수 없는 승리의 월계관이다.

그래서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너희가 죽고자 하면 살 것이며, 살고자 하면 죽게 된다”는 역설적(?)인 말씀으로 연약한 인간의 속성 안에 용기를 불어 넣어주시고 계신다. 선을 이루는 것도, 악을 이길 수 있는 비법마저도 결국은 자아를 죽일 수 있는 ‘용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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